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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연구

내가 읽은 레위기

제사장만이 특별한 의복을 입음. 그들을 위해 제물의 일부가 따로 떼어짐. 그들은 땅을 소유하거나 비제사장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음. 그들은 훨씬 더 수준 높은 순종을 해야 하며,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거나 백성에게 적절한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즉각 처벌


1장부터가 여호와로 시작해서 여호와로 끝난다. 제사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근데 문제는 이 제사제도는 고대 근동의 문화라는 사실이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 꼼꼼한 부분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모두 담겨져 있다. (레1:1-17)


제물이 소, 양, 새로 준비될 수 있었다. 형편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었다. 출산이 가능한 암컷 대신 수컷이 드려졌다. 번제를 세 번이나 설명한 1장에서 중요 맹점은 경제적 안정성이다. 하나님은 꼼꼼하시다.(레1:1-17)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당시 제사제도와 너무 흡사하다. 예수가 그러했듯이 하나님도 문화 속으로 오셔서, 개혁하셨다. 제사제도 전체를 바꾸기보다 그 의미와 대상을 바꾸셨다. 공의와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은 가치관에 있다. (레1:1-17)


제사장들과 그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겨두는 것에 대해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란 표현을 썼다. 레위기 여러 번 등장하는 "거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거룩" 그것은 함께 사는 것이다.(레2:1-16)


하나님은 꼼꼼하시다. 곡식을 이용하는 소제에서는 누룩을 사용하지 못하고 대신에 소금을 사용하도록 했다. 밀과 보리류로 만든 음식을 장기 보관하는 방법이다. 첫 이삭을 볶는 이유도, 기름을 붓는 이유도 마찬가지다.(레2:1-16)


복음서에서 개인 혹은 집단주의적 신앙의 병폐를 나무라시며 예수가 사용하신 단어는 '누룩'이다. 반면 부패한 시대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소금'이다. 본문에서 "지극히 거룩한 것"은 힘없는 제사장을 먹이는 것이다.(레2:1-16)


(레2:1-16) 성경 속에서 '같이 먹다.' '대접하다.' = '거룩하다.'


화목제에서는 수컷과 암컷을 가리지 않는다. 하나님 그리고 이웃과 화목 하는 제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모든 제사는 레위인과 약자들이 나눠 먹는다. 제사를 통해 부의 분배, 경제적 화목이 이루어졌었다.(레3:1-17)


당시 주술행위였던 피뿌림이 계속된다. 그러나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때 그 목적이 주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된다. '향기로운 냄새', '드리는 식물' 등 한국의 제사제도와 흡사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대상의 차이다. (레3:1-17)


여호와 신앙은 형식보다는 그 정신의 차이다. 누가 생명의 주인인가? 피와 기름을 먹는 것을 통해 생명을 얻는 의식이 있던 당시 문화 속에서, 여호와는 모든 기름이 당신의 것이라고 한다. 예배는 주권 회복이다.(레3:1-17)


이 시대에도 피를 빨아먹고, 생명을 연장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저들은 축복기도로 예배를 장식하며 울부짖는다. 이 시대에 그 피는 돈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그 돈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실 판이다.(레3:1-17)


여호와의 금령을 어기면 속죄제를 한다. 속죄제 설명 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대상은 '제사장'. 기독교 지도자들은 가장 먼저 회개해야할 대상이다. 그들이 죄가 없다고, 거룩하다고 착각하는 교인들이 들어야할 대목이다.(레4:1-12)


피 전부, 모든 기름, 모든 고기, 머리, 다리, 내장, 똥.. 수송아지 전체를 남김없이 속죄제에 사용한다. 이것이 번제, 소제, 화목제와 다르다. 속죄는 속죄제물의 철저한 희생 없이 불가능한 것이다.(레4:1-12)


단, 기름을 취하는 방법은 화목제와 같다. 속죄의 의미 속에 화목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속죄가 중요한 이유는 속죄 받은 제사장과 백성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때문이다. 속죄는 화목을 위해 존재한다.(레4:1-12)


제사장과는 달리 회중과 족장들에게는 양해조항들이 있다. 1) 깨닫지 못하다. 2)부지중에 범하다. 그 법이 제사장에게 보다 적극 적용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시대에 제사장들이 한 일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레4:13-26)


제사장과 족장의 차이에서는 성막에 피뿌림이 있고, 없음도 있다. 누가 더 성결해야겠는가? 하나님 앞에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이다. 죄 앞에는 모두 동일한 속죄제를 드렸지만 그 무게가 제사장에게 있었다. (레4:13-26)


회중을 위한 속죄에 대한 설명은 10절 '화목제 같이'에서 '속죄제 같이'로 바뀐다. 소의 모든 것을 태워 없애는 것은 같았다. 죗값을 치루는 것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같다. 모두가 같이 회개해야 한다.(레4:13-26)


제사장과 회중은 소를, 족장과 평민은 염소를 드린다. 제사장과 장로들, 회중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다. 제사장, 족장, 평민에게는 '화목제 같이' 했고, 회중은 '속죄제 같이' 했다. 회당에 모인 자들은 들으라. (레4:27-35)


평민은 염소가 없으면 양으로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암컷으로 드려야 했다. 평민에게는 제물의 선택권이 있었고, 다만 더 소중한 암컷을 드리도록 명하였다. 가장 낮은 계급이 가장 귀한 '암컷'을 드릴 수 있었다. (레4:27-35)


제사장에 이어, 장로들과 회중, 족장 그리고 평민에 이르기 까지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속죄제'에 참여하였다. 죄의 문제 앞에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에게 자유를 주기를 원하신다. (레4:27-35)


공의를 위한 증인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짐승 사체를 만지는 부정한 관습과 같이 더러운 짓이다. 실수할 수 있는 부정한 사람 만지기나 헛된 맹세들도 깨닫고 자복해야하는 일이다. 정의 없이 덮어둘만한 것이란 없다.(레5:1-6)


힘없는 사람들은 염소와 양으로 드려야할 것을 산비둘기 or 집비둘기새끼 둘, 밀가루 다섯 컵으로 대신했다. 사치스럽게 기름과 향유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빈약계층을 위한 배려다. 이것이 속죄제라는 것이 인상 깊다.(레5:7-13)


하나님의 물건에 대한 범죄와 이웃의 물건에 대한 범죄에 대한 배상법, 속건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라. 너의 지정한 가치를 따라 드리라고 한다. 마음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돌려야할 때다.(레5:14-6:7)


하나님께나 이웃에게나 범죄한 것은 구별되게 숫염소가 아닌 수양으로 속제하고, 오분의 일을 더하여 갚아야 한다. 하나님께 빚진 것이나 이웃에게 빚진 것에 대한 법은 같다. 왜 이웃을 함부로 하는가?(레5:14-6:7)


제사장이 지켜야할 번제의 규례. 불을 끄지 말라. 불을 끄지 않으면 고깃기름 냄새가 성막을 뒤덮을 텐데? 함께 나눠 먹었던 맛있는 고기와 하나님의 통치가 선포된 성전의 삶이 곧 임할 하나님 나라가 아니겠는가?(레6:8-13)


재를 태울 때는 세마포 옷, 버릴 때는 다른 옷을 입어야 했다. 다 태우고 나서야 새 옷을 입을 수 있다. 예수가 입으셨던 세마포 옷이 생각난다. 모든 삶을 드리고 나서야 새롭게 되는 것이다.(레6:8-13)


화목제의 기름을 불 위에 사르라. 타종교에서도 이미 향과 냄새는 중요한 각성제다. 그러나 여호와는 단순히 각성을 넘어서 화목제로 모두를 번제 앞에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레6:8-13)


소제, 곡식가루로 드리는 제사는 한 움큼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제사장들 몫이 된다. 누룩을 넣지 않고 구워 오래 보관하도록 한다. 제사장을 주워 먹게 한 것을 "거룩"이라 표현한다. 레위기에서 "거룩"은 무엇이겠는가?(레6:14-23)


제사장 위임식의 소제, 먹지 않고 완전히 태운다. 과자 타는 냄새가 진동할 성막! 이웃과 하나님의 주셔서 저장된 곡식가루를 없애고, 다시 하나님과 이웃 앞에 선다. 자연스레 하나님과 이웃에 의존적인 제사장이 된다.(레6:14-23)


그렇게 소제는 제사장들에게는 '영원한 소득', '영원한 규례'가 된다. 제사장들은 소제에서 남은 것을 받아먹으면서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먹어야 했다. 자신의 것이 아님을 제사장들은 늘 기억해야 한다.(레6:14-23)


선택한 제사장들을 거룩함으로 먹이신다. 하나님 앞에서 행한 속죄제의 고기를 '지극히 거룩'하다 하시고, 이를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하신다. 여기서 거룩은 '구별된' 혹은 '보장된' 제사장의 몫으로 여겨진다.(레6:24-30)


피가 묻은 옷과 철그릇은 물로 닦고, 피를 먹은 토기는 깨부순다. 피와 고기의 흔적이 제사장들에게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하나님과 이웃 앞에 선다. 고기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레6:24-30)


그러나 먹지 못하는 속죄 제물도 있었다. 그것은 제사장과 회중을 위해 드려진 것으로 성소에 피를 뿌리는 의식이 포함되어진 것이다. 다시 이 부분이 언급해 제사장과 회중에게는 고기보다 거룩의 중요함을 알린다.(레6:24-30)


먼저 언급된 제도가 반복된다. 레위기의 제사제도는 심플하다. 모든 기름을 생명의 주되신 하나님께 돌리면 된다.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거룩'이다.(레7:1-10)


속건제와 속죄제의 고기는 제사장 것이다. 번제를 집행한 제사장은 그 가죽을 얻는다. 화덕, 솥, 번철에서 만든 모든 과자와 빵은 제사장 것이다. 다만 '평균히 분배할 것'이라는 명령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레7:1-10)


'평균히 분배'를 속건제와 연관시켜볼 때, 탐욕의 죄 앞에 제사장은 평등히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명령 받았다. 토지와 식량이 보장된 나라가 있을까? 그 나라는 하나님 나라일 것이다.(레7:1-10)


감사로 드린 화목제의 일부도 제사장에게 속한다. 하나님께 드려 거룩함을 얻은 것만 제사장의 것이 된다. 먹는 것 하나에도 하나님 앞에 윤리, 위생, 종교적 깨끗함이 지켜져야 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레7:11-27)


감사의 화목제는 하루에 다 먹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도 부리면 안 되고, 다 같이 나눠야 한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떠올려라. 우리가 세상 것을 다 가질 것 같지만, 나누지 않는 것은 재앙이다.(레7:11-27)


서원과 자원의 감사희생은 이틀을 먹는다. 날을 넘긴다는 의미가 있다. 하루에 끝날 서원과 자원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삼일에는 태워 없앤다. 오래 붙들고 있는 것들이 서원과 자원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레7:11-27)


부정한 물건, 사람, 짐승 등을 만진 뒤 고기를 먹는 자와 기름과 피를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다. 거룩함이 필요하다. 위생, 윤리, 종교적인 거룩함과 깨끗함 없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아니다.(레7:11-27)


화목제를 드리려는 자는 자기 손으로 제사장에게 줘야 한다. 1)기름과 가슴. 요제 후 제사장의 것이 된다. 2)우편 뒷다리. 거제 후 제사장의 것이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주신 '영원한 소득' (레7:28-38)


아론 일가에게 주어야 하는 제물은 여호와께서 제사장으로 세우실 때부터 주시기로 한 '영원한 소득'이다.(이것이, 즉 자기 몫이 없는 제사장을 챙겨주는 것들이 번제, 소제, 속죄제, 위임제, 화제의 규례이다.) (레7:28-38)


제사장 위임제를 위해 회중을 모읍니다. 회중도 그 위임에 동참합니다. 어떤 지도자도 회중 없이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힙니다. 우림과 둠밈이라는 주술도구도 줍니다. 그것은 상징성이 더 큽니다.(레8:1-17)


관제용으로 쓰인 관유를 사용해 모든 성막 도구와 아론의 머리를 깨끗하게 한다. 향이 많이 나는 기름이었다. 속죄제의 수송아지 피를 단 구석구석을 바른다. 기름과 피, 생명의 주인의 것으로 준비되어 진다.(레8:1-17)


아론일가를 위한 속죄제. '수송아지' 그들은 과거 '금송아지'를 만들어 득죄한 일파다. 하나님의 대적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완전한 속죄의식을 통해 사람을 쓰신다. 그래서 의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다 태워 없앤다!(레8:1-17)


제사장 위임제의 특징은 역시 '전부', '모든'이란 부사다. 완전히 회개하는 것. 그것이 제사의 준비자, 제사장의 할 일이다. 각을 뜨는 행위나 피 바름을 통해서도 완전히 죽다. 완전히 살다가 이해되어진다.(레8:18-29)


각 뜨는 행위는 제사의 준비단계로 본다. 피 바름은 중동의 전통이나 의미는 다르다. 짐승의 힘을 얻거나 죽음을 각오하는 것의 의미에서 완전히 죽는 것과 완전히 사는 것의 의미로 전환되어진다. (레8:18-29)


기름과, 꼬리, 내장, 뒷다리와 무교병, 기름과자, 전병 등을 취하는 것은 화목제와 유사하다. 이처럼 모든 제사는 속죄와 화목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다시 거룩이라는 말로 알려진다. 용서와 사랑이 넘치게 하라.(레8:18-29)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관유와 피가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진다. 그리고 같이 먹는 시간을 갖는다. 영적필요와 육적필요가 채워진다. 먹고, 나머지는 소유하지 않고 버린다. 갖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어렵다.(레8:30-36)


남는 것을 떠나보내는 것은 형식상 거룩과 실제적 거룩한 삶에 대한 훈련이다. 혼자라면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같이 훈련받고 같이 행한다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제사장은 그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레8:30-36)


칠 일 동안의 제사장 수련회. 칠 일 동안 먹고, 여호와의 법도를 지켜 행하도록 훈련한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 천국이기에 제사장 위임식은 같이 사는 훈련이 된다. 이를 행하면 생명을 얻는 것이다.(레8:30-36)


칠 일 간의 위임제를 마치고, 이스라엘 장로를 부른다. 그들 앞에서 아론이 할 일은 자신을 위해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그 후에야 회중을 위해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레9:1-11)


아론과 그 아들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여호와의 명'이다. 제사장의 역할은 '여호와의 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화목케 하는 직책은 그 명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케 하는 것이다.(레9:1-11)


율법을 완성해 가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역이다. 그의 지속가능한 명령이 구습이라고 잊혀 져서는 안 된다. 율법을 진행시켜야 한다. 그것이 제사장이라고 믿는다.(레9:1-11)


"모세의 명한 것과 같았더라." 임의의 법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의 법을 따른다. 금송아지 같은 괴법이 아니다. 제사제도는 다 같아도 그것이 대상이 달라지면 거룩이 아니다. 거룩은 그 법을 지켜나가는 것이다.(레9:12-24)


이제 아론과 그 아들들은 백성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백성을 위해 사는 삶이 제사장의 삶이며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다.(레9:12-24)


(제사를 마치고)백성을 향해, 백성에게 축복한다. 영광이 온 백성에게, 불이 제단 위에 내려진다. 백성이 소리 지르며 엎드린다. 백성을 위했더니 온 백성이 하나님을 만난다. 참목자는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게 한다.(레9:12-24)


여호와 법대로 행하는 삶을 강조해온 레위기. 불행히도 첫 번째 반역자는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다. 제사장은 성막 안에서 범죄하면 죽는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야 할 제사장이 그 법을 무시하면 죽는다.(레10:1-11)


모세는 아들을 먼저 보낸 아론에게 1)말씀을 가까이, 거룩할 것 2)사체를 형제들을 통해 진 밖으로 옮기게 3)통곡하지 말게 4)관유 곁에 있게, 회막에서 나가지 말게, 다시 본분을 지켜 생명을 유지하도록 한다.(레10:1-11)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직접 명령하신다.1)회막에 들어갈 때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분별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2)그리하여 분별 있고 거룩하라.3)법을 자손에게 가르치라. 제사장, 백성과 똑같이 살 수 없다.(레10:1-11)


형제의 죽음에 감정적이지 말고, 금주하여 절제하도록 가르친 후. 화제로 드린 소제와 요제로 드린 화제를 먹는 법을 가르친다. 절제하도록 가르친 것이 영원한 규례라면 먹도록 가르친 것은 영원한 음식이 된다. (레10:12-20)


음식이 과연 형제를 잃은 두 사람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이번에 그들은 먹으라고 명한 것까지 불살랐다. 그들에게 음식보다 형제의 죽음과 공포가 더 중요했다. 경외 없이 행한 형제들이 남기고 간 유산은 두려움이다.(레10:12-20)


먹지 않고 불태운 것. 모세가 명을 다시 지키지 않았다고 형제를 나무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법의 확대적용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확대적용이다.(레10:12-20)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대한 구별은 고대근동의 일반문화다. 그 구별하는 방법에는 네 가지를 제안한다. 1)정상적인: 그 종으로써 모든 조건을 갖췄는가? 2)건강과 위생에 좋은 것인가? (레11:1-28)


3)해당 짐승이 비이스라엘 관행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4)제사에 드린 음식만 정결하다. 1)과 2)는 맞지 않는 사례가 많다. 3)은 증거가 불충분하다. 4)는 성경 안에서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어서 좋다.(레11:1-28)


비합리적으로 짐승을 정과 부정으로 나누는 방법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결국 종교적, 차별적 선택을 요구한 규정으로 보인다. 이 규정이 고대 근동과 유사하다는 것도 명쾌한 답은 아니다. 결국 순종의 요구다.(레11:1-28)


주검을 만지거나 먹으면 옷을 빨라! 주검을 담은 목기는 물로 씻으라! 주검을 담은 질그릇은 깨뜨려라! 이상은 "부정" 그러나 샘물, 방축물 웅덩이, 심을 종자는 "정"하다. 결국 이 "부정"은 의식적 규정이다.(레11:29-47)


모든 규례가 고대근동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켜감을 통해 구별되고 거룩한 삶을 요구하신 하나님의 본의를 추상해본다. 그 일반적인 규례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포하심으로써 하나님 주권을 세워 가신다.(레11:29-47)


당시에는 생리혈과 정액을 잉태치 못한 증거로 보고 부정하게 여겼다. 또한 생리혈에 마귀가 산다고 보았다. 규례 중에는 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부정이라 하는 부분이 많았다. (레12:1-8)


그 이유로는 1)일반적 통념 차용 2)의식의 변화 요구. 사회의 통념을 그대로 사용하되 귀인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다. 모든 것에서 돌이켜 회개하는 백성이 되겠다는 것이다.(레12:1-8)


즉 번제와 속죄제를 통해 출산모는 생명의 주인 앞에 다시 자신을 죽이고, 새 삶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형편에 따라 달리 낼 수 있었다. 번제에 속죄제는 기본 제사로서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의미가 강하다.(레12:1-8)


나병은 피부전염병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바벨론은 피부전염병을 신들의 저주로 보고, 신에게 버림받았으니 사람에게도 버림받으라고 내쫓았다. 자연적 혐오감과 종교적 이유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레13:1-8)


그러나 주의 법은 진찰을 통해 치료 혹은 정결을 목적으로 규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동체의 보건을 위한 목적도 포함된다. 격리 후 재진찰을 지시하는 것으로 추측하면 의학적 이유, 곧 치료의 목적도 찾아볼 수 있다.(레13:1-8)


피부전염병에 관하여 제사장은 진찰, 격리 등을 맡은 의료인이다. 공동체를 위한 제사장적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경과 좋은 병은 "부정하다"고 경고하지만 격리하지 않는다. 나은 병은 "정하다"(레13:9-23)


여기서 "정하다"와 "부정하다"는 병의 위험성과 진행여부를 말하는 말로 보인다. 공동체를 위해 그 병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이다. 종기도 마찬가지다. 전염성이 없어도 의심되면 7일을 가둔다.(레13:9-23)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환자들을 죄인 취급하고 짓밟을 이유가 여기에는 없다. 공동체를 위한 위생적 구별을 종교주의자들은 멋대로 개인적 죄과로 치부했다. 그러나 주의 법, 예수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레13:9-23)


화상으로 약해진 피부도 전염병 발생 가능성이 있다. 진찰 후 부정하다/7일 격리/정하다 로 판정한다. 철저히 환부 상태와 전염성에 의해 판정된다.(레13:24-37)


옴 환자도 동일한 방법으로 다룬다. 환부의 상태와 전염성으로 정과 부정을 나눈다. 다만 털에 발생하는 병이기에 제모하고, 특별히 더 전염성이 있는지 2주 동안 격리시키는 것이 다르다.(레13:24-37)


색점은 피부전염병을 판단하는 증상. 색점이 부유스름하면 어루러기, 대머리와 함께 정하다. 그러나 색점이 희고 붉으면 피부전염병, 부정하다.(레13:38-46)


여기서 정과 부정은 전염성에 대한 음성과 양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44,46,48). 종교적인 단어가 전염병 경고에 쓰인 이유는 당시에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레13:38-46)


피부전염병 판정을 받으면 통곡의 자세로 "부정하다" 외친다. 그리고 부정은 병이 있는 동안 계속된다. 또 진영 밖으로 나가 살아야 하는데 공동체 의식 없이 이런 자발적 경고와 격리는 불가능하다. (레13:38-46)


피부전염병 환자의 정결법 1)진찰 2)정결제 3)7일 진 밖 대기 4)제모, 세탁, 목욕. 피부전염병에 처방하는 기본적 조치. 공중보건을 위협 할 수 있는 문제를 종교적 정과 부정으로 나눴지만 실제 보건을 위한 규례.(레14:1-9)


피부전염병에 걸려 진 밖에 살다가 다 나아서 진 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결의식 외에 속건제가 필요하다. 속건제는 보상제로서, 부정한 기간 동안 드리지 못한 제물 혹은 치유에 대한 감사 정도로 보인다.

요제로 드리되, 속건제의 제물도 제사장 몫이 되는 것이 옳다. 부정한 자가 제물을 드리지 않는 동안 제사장의 몫도 줄었을 것이다. 어린 숫양 두 마리, 어린 암양 한 마리, 기름과자, 기름 한 록 등을 드린다.

피부전염병이 제사로 정결을 얻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1)고대근동에 피부전염병은 신의 저주로 보았기 때문 2)주문으로서의 제사가 아닌 감사로서의 제사 3)의식적으로도 정결하기 위함. 나는 3)번이다.

(레14:10-20)


제물의 양은 병자가 치루지 않았던 양이라 많다. 그러나 여기 형편에 맞춘 규정량이 있다. 떡과 고기의 양은 줄었는데, 기름의 양은 같다. 아마도 기름은 사용하는 곳이 많아 동일해야 했던 것 같다.

수천 년 전에 이미 지금보다 더 납세자 중심의 법이 있었다는 것이 새롭다. 형식보다 보호와 구원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는 주의 법이다. 피는 생명이고, 기름은 보호다. 생명과 보호를 모든 곳에 바른다.

속건제로 보상하고, 속죄제로 회개하고, 소제와 번제로 죄를 태워 버린다. 현실, 의미, 형식 총체적인 회개다. 당시 신의 저주를 생각되어 개 취급당하던 피부병자에 대한 보장제도와 의식전환이 주의 법령으로 내려진다.

(레14:21-32)


집에 나타난 색점이 곰팡이균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심각한 상황 설정 상 전염성을 의심해본다. 제사장의 할 일이 많다. 집에 나타난 위험물질까지 살펴봐야 한다. 백성 뿐 아니라 환경까지 돌보는 것이다.

위험물질이 발견된 집에 대한 조치 1)집 비우기 2)증상 발견 시 7일 간 폐쇄 3)재관찰 4)퍼졌으면 색점 있는 돌과 흙 제거, 새 돌과 흙 보충. 여기까지 제사장 역할은 보건실무자다. 너희도 돌아보고 돌보라!

(레14:33-42)


1 색점 재발되면 제사장이 확인하고 색점 전염이 맞으면 부정하다 하여 집을 철거한다. 집 폐쇄 후에 출입 혹은 숙식하는 모든 자는 부정하다 하므로 세탁하게 한다. 세탁하는 정도는 종교적 의식이기보다는 보건 상식에 해당한다.

2 제사장이 색점 전염이 안 된 것을 확인하면 정하다 하고, 정결제를 드린다. 새 두 마리를 드리는 데, 한 마리는 죽이고 한 마리는 놓아 준다. 여호와 앞에서 모든 병이 죽고 새 생명을 얻은 것임을 감사하고 공식적으로 해방된다.

3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병의 규례이다. 보건철칙이라 부르는 것이 더 와 닿는다.

(레14:43-57)


1 유출병은 출혈을 동반하는 성병. 성행위로서 신과 접하는 행위들이 있었던 동시대 문화에서 성병은 유행처럼 번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출병에 걸리면 주변 세탁과 목욕을 통해 정결하도록 하도록 했으며, 이는 저녁까지 유효하다.

2 여기서의 부정도 불결의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성적 문제가 세탁과 목욕으로 해결 가능한 이유는 전염성이 악성 피부전염병에 비해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출병 환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면이 있다.

3 그만큼 타종교와 다르게 성적 순결함을 요구한 법이다. 성 자체를 부인하지 않지만 그 문란함으로 생기는 성병에 대한 경고는 확고하다.

(레15:1-12)


1 생리하는 여성, 그 여성과 성관계한 남자는 7일 간 부정하다. 침상, 앉은 곳, 그 위에 놓여진 것들도 부정하다. 세탁과 목욕을 해야 한다. 이는 7일 간 계속되는 생리 시 여성을 보호하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2 당시 생리는 마귀가 주는 시련으로 보았다. 난 여기서 부정은 불결로 볼 뿐이다. 생리기 외의 출혈은 현대의학에서도 다른 여성병으로 추측될 수 있으며 성경에서도 출혈이 멈출 때까지 생리에 대한 법을 적용한다.

(레15:19-33)


1 여호와의 법을 무시한 죄로 죽은 나답과 아비후. 이에 대한 대책은 속죄제와 번제이다. 본래 제사장 의복 대신 겸손하게 세마포를 입고 여호와 앞에 엎드린다. 직분자라고 권세를 부릴 줄 알았던 오만한 자들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2 새로 드린 제사처럼, 숫염소 하나는 속죄제가 되고, 하나는 놓아준다. 또 두 염소를 뽑아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여, 하나는 아사셀, 마귀에게 보낸다. 마귀의 것이 되는 것은 또 하나의 죽음으로 볼 수도 있다.(레16:1-10)


1 아론은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린다. 향을 피우고, 피를 뿌린다. 이제 제사장 일가에게 자신이 왜 먼저 제사를 드려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졌을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를 통해 그들은 여호와의 법을 존중하게 된다.

2 자신과 집안을 위한 속죄제 다음으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린다. 속죄제 동안에 아론은 회막 출입이 금지된다. 지도자, 제사장이 아니라 전문직이 되는 것 같다. 권위는 축소되고 업무는 빡빡해졌다. 회막을 나온 후에도 계속된다.

3 속죄제 외에 피뿌림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피로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케 하라는 명령도 있다. 모든 죄에서 속죄함을 받고 성결하라는 명령이다. 염소에 죄를 가지고 광야로 가게 한다. 쥐고 있던 죄를 보내는 것이다.(레16:11-22)


1 제사장은 지성소를 다녀온 후 바로 목욕하고, 세마포 대신 자기 옷을 입고,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린다. 제사장을 도와 마귀, 아사셀에게 염소를 보낸 일과 속죄제 찌꺼기를 밖에서 불태워 처리한 사람도 목욕하고 세탁한다.

2 아사셀에 대한 언급은 죄를 이스라엘에서 떠나보내어 죄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속죄제 찌꺼기도 밖으로 내보는 일 등을 통해 진영 안과 밖이 철저히 구분된다. 죄를 진영 밖으로 내 보내라!

3 영원한 규례, 안식일 중의 안식일, 일 년 중 한 번, 본토인과 거류민 모두 참여해야 하는 중요한 규례가 여기 있다. 문제는 이 규례가 구원보다도 속죄라는 초점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레16:23-34)


1 진영 안 혹은 밖에 짐승을 잡는 사사로운 규정보다 중요한 문제가 여기 있다. 피흘림의 죄에는 다른 신 혹은 다른 뜻을 위해 흘린 피라는 데 문제가 있다. 생명의 주인을 무시한채 지금도 풍요를 위한 무의미한 살생이 계속된다.

2 들에서 짐승을 잡으며 종교의식으로의 간음을 즐기던 문화가 바뀐다. 여호와 앞에서 속죄의 의미를 가지고 짐승을 잡는다. 본토인과 거류민이 함께 참석해서 지켜져야 했던 이 법은 당시의 문화 의식을 여호의 신앙으로 바꾸는 일이다.

3 여호와에 의한, 여호와를 위한, 여호와의 법이 여기 있다. 그 법을 무시하거나 따르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 끊어진다. 법치를 강조하는 성경이다. 그 법은 욕망으로 더러워진 구습을 하나님의 정의로 새롭게 한다.(레17:1-9)


1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과 규례를 금지하고, 여호와의 법도와 규례를 지켜 행하도록 하는 것이 레위기의 분명한 목적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하시기 때문이다. 비슷해 보이나 다른 것이다.

2 근친상간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애굽 왕족에서 유행하던 것이기에 영향을 받아서 경계했을 것이다. 어머니, 누이, 의붓누이, 조카, 외조카, 고모, 이모, 백모, 숙모, 며느리, 형수, 제수 등 모두 안 된다. 가정을 지켜라!

3 아내 생존 때 그 형제를 데려와 욕보이는 일을 해서 마음에 상처를 줘서는 더욱이 안 될 일이다. 신25장에 물론 형이 죽으면 동생이 장가는 법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생이 형의 아내를 책임져야하는 법이다.(레18:1-18)


1 각종 가증한 일이 여기 있다. 월경 중 성관계, 이웃의 아내와의 간통, 자녀를 이방신의 제물로 주는 일, 남자 간의 성관계, 짐승과의 성관계 등이 그것이다. 가나안이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이유이다. 가정을 지키라!

2 본토인은 물론, 거류인도 지켜나갈 이유가 여기 있다. 일반 적용되는 법으로 성적인 더러움과 영적인 더러움을 구별하지 않고, 더러움을 만들어가는 족속은 그 땅에서 멸한다.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3 그 이유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라!" (레18:19-30)


1"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그 거룩함의 면모에는 무엇이 들어가는가? 부모경외, 안식일준수, 우상숭배금지, 우상제조금지, 화목제음식2일내 소비규정, 곡식과 포도원 수확 중 가난한 사람 배려..

2 그리고 도둑질, 거짓말, 거짓 맹세 금지. 거룩을 설명할 때, 부모경외가 가장 먼저인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서 의식의 준수를, 이웃 사랑으로 구제와 정의를 강조한다. 이미 모세에 율법에 드러난 것이다.

3 하나님이 거룩하다는 말을 법으로 가져오면 여호와의 법은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둘 다 지키는 것이 거룩이다. 동시대의 개인주의 혹은 국가주의 신앙과 다르게 독특하다.

4 예수 믿는다고 하나님을 율법을 건너 뛸 수는 없다.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진다. 하나님의 주권 행사는 그 법대로 이뤄지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 정치다.(레19:1-12)


1 "나는 여호와니라" 그 이름 앞에 지켜나가야 할 것들은 억압, 착취, 임금지불 지연, 청각장애인 저주, 시각장애인 방해 등을 금지하고 재판 시에는 빈자와 부자를 막론하고 공의롭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네 하나님을 공경하라"

2 이웃에 대한 비방 및 중상모략은 금지되지만 솔직히 비판하여 대신 마음으로 미워하는 일들은 없게 하고, 이웃의 희생을 얻는 이익은 금지되며, 원수를 갚지 말고, 동포를 원망치 말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

3 다른 두 종류 짐승의 교미와 다른 두 종류 종자를 파종하는 일과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순결성에 대한 상징이다. 그런데 왜 약혼한 여종과 동침하면 죽이지 않고 보상에 해당하는 속건제로 대신하나?

4 여종은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배상할 의무는 없고 속건제를 드릴 필요가 있다. 의식적 회개가 사회적 해방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해방'을 두 번 언급해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듯하다.(레19:13-22)


1 각종과목을 심을 때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3년 동안 여기고 먹지 말 것. 넷째 해에는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릴 것. 다섯째 해에 열매를 먹으면 열매가 풍성하다. (원예학 전문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2 동물을 피째 먹거나, 점을 치거나, 술법을 행하거나, 머리를 둥글게 자르거나, 수염 끝을 손상시키거나, 죽은 자 때문에 문신하는 일은 모두 불신앙이다. 나는 여호와이니라!

3 경제적 혹은 종교적 이유 그 무엇도 딸을 창녀가 되게 하는 것은 온 땅을 더럽히는 일이다. 내 희년의 법(안식)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4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고,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5 노인을 공경하라. 하나님을 경외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6 거류민을 학대하지 말라. 본토인처럼 섬기라. 자기처럼 사랑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7 재판 시에 길, 무게, 양 측량을 공평한 저울, 공평한 추, 공평한 에바,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불공평한 '애굽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8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9:23-37) 지속한 가능한 주의 율법을 고민해 봅니다. 의식적 성결과 사회적 정의가 뗄레야 뗄 수 없도록 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1 암몬의 아동 인신 제사는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것들이 담겨져 있다. 우상숭배와 생명경시. 이런 죄는 공동처벌에 처한다. 공동체가 죄를 보고도 못 본 척 한다면 백성 중에 끊으신다. 죄 앞에 침묵하는 것도 분명 죄다.

2 음란은 거룩의 반대말로 우상, 접신, 무당을 따르는 자들에게 쓰였다. 이들은 주의 백성에서 끊어진다. 깨끗하고, 거룩하라는 말에는 생명경시와 우상숭배 등이 나타났던 시대 상황과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3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는 분명한 하나님의 입장표명. 지속 가능한 구약 율법에 대해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다르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4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멸시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부모를 때린다고 봐도 된다. 종교의식은 잘 지켜가면서 부모에게는 드릴 것이 없어 봉양도 안하는 자들에 대해 막7:10-13이 경고하던 것을 잊지 말자.(레20:1-9)


1 반드시 사형시킬 대상들은 이러하다. 이웃과 간통한 남녀, 계모와 아들의 동침,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동침, 남성 간 동침, 아내와 장모를 함께 동침(화형). 짐승과의 교합. 악행을 없애기 위하여 사형시킨다.

2 민족에서 잘려나갈 죄는 의붓형제의 하체를 본 일, 월경 중인 여자와의 동침, 이모 혹은 고모와의 동침 / 자식 없이 죽을 죄는 숙모와의 동침, 형수 혹은 제수와의 동침. 성적문제를 공동처형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공동체 문제다.

3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간다(자기들의 죗값으로 죽는 것이다.). '죄를 담당하리라.' 등을 통해 성적 문제는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들이 짊어져야할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레20:10-21)


가나안 풍속과 여호와의 법의 대조.

행하지 말아야 할 것과 지켜 행할 것. 가증히 여기시는 것과 거룩하게 여기시는 것. 그 땅에서 토해낼 이유와 구별시킬 이유.

짐승이나 새도 그런 이유에서 구별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정과 부정의 기준이 그 가나안 풍속과의 구별에 있었다면, 이는 분명 영적 전쟁이다.

그 시대의 풍속과 다른 '새 법'을 만드셨다. 이 법 안에는 하나님의 주권 회복과 시대정신 타파라는 목적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연히 접신, 박수무당은 없어져야할 것들이었다.

(레위기20:22-27)


제사장은 얼마나 깨끗하고 거룩해야 하는가?

1) 죄로 인한 문제 혹은

2) 죄의 결과물로 인한 문제에서도 구별되어야 했다.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이기 때문에

1)은 시체를 만져 사회적 약점을 갖는 것, 근친상간을 하는 것 등의 문제 등을 언급했다.

여호와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2)는 가나안식 통곡자해를 금지하고, 창녀나 이혼녀와의 결혼을 불허하여 죄가 이유가 되는 모든 일에서 멀리하게 했다.


따라서 제사장의 딸이라도 음행하면 화형 시킨다고 경고해야 했다.

(레21:1-19)


대제사장에게만 너무 엄격한 법.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흠 없는 어린양 예수와 가족 보다 사역을 중요시 하게 하셨던 예수의 제자들.

시대적인 이유에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대제사장과 박수, 무당이 잘 구별되지 않은 시대. 선천적, 후천적, 질병에 의한 문제들만으로도 음식을 드릴 권이 사라진다.

그러나 제사장의 직분은 유지가 되고, 제사장에게 할당된 양을 장애를 가진 자들도 가질 수 있었다.

하나님은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목적이 온전히 구별된 제사장이라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구별된다는 말에는 분명히 현실적이 요구가 있었다.

(레21:10-24)


제물을 취급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스스로 구별됨이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병환자, 유출병자는 정한 후에야 먹을 것이다.

모든 부정한 것을 만진 자들과 설정한 자들은 목욕하고 해진 뒤에 먹을 것이다.

정한 다음에야 먹을 것이다.(레22:1-16)

이 시대의 제사장들아. 더러움을 안고 먹지 말라.


1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기쁘게 받으신다. 흠 있는 것들이란 1)상처나 병이 있는 것들로 화제물로 드리지 말라. 2)지체가 더하거나 덜한 것은 자원해서 드릴 때만 허락한다. 3) 고환이 다친 것은 금지한다.

2 기쁘게 받으심이 되려면 1)7일 동안 어미랑 있게 한 새끼를 8일 째에 드리라 2)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지 말라(제물을 드리는 자의 경제를 보호한다) 3)제사 음식은 이튿날까지 두지 말고 당일에 먹으라.

3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했다. 나는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로 너희에게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다. 내 이름을 속되게 말고, 내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레22:17-33)거룩이 대체 뭐길래..!


1 안식일에는 노동은 안 되고, 성회는 된다. 3월 14일은 유월절이다. 15일부터는 추수의 시작을 알리는 무교절이다.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며, 화제를 드린다.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노동은 안 되고, 성회는 된다.

2 첫 이삭을 한 단을 제사장에 가져오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안식일 이튿날 흔들어 드려라. 같은 날에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드리고,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2/10 에바를 화제로 삼고, 전제로는 포도주 1/4힌을 쓰라.

3 예물 드리기 전까지는 떡, 볶은 곡식, 생이삭, 모두 먹지 말라. 거주민이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다. 거주민은 땅에서 나오는 소산에 대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려야 했다.(레23:1-14)


1 무교절, 첫 수확 7주 후 이튿날. 곧 희년과 같이 50을 채우는 그 날에 축제가 벌어진다. 이는 맥추절, 오순절이라 부르기도 하는 칠칠절이다. 새 소제에는 누룩까지 넣어 떡은 만들고, 여럿 고기를 잡는 거대한 축제다.


2 이 축제 안에는 속죄, 변상, 제사장에 대한 보상,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한 배려가 포함되어져 있다. 작은 희년과 같은 절기라고 여겨진다. 하나님나라를 생각해본다. 바로 모두가 함께 해도 즐거운 축제!(레23:15-22)


1 이스라엘 달력에서 칠월은 신성한 달이다. 나팔절은 곧 그 첫날로써 인간에게 신성을 촉구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절기가 그러하듯 노동이 금지되고, 성회는 개최된다.


2 칠월 10일은 속죄일이다. 성회가 개최된다. 노동이 금지되는 것과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것이 반복된다. 그리고 안식일을 쉬어야 한다고 말해, 안식을 재차 강조한다. 절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속죄와 안식이다.(레23:23-32)


1 종교력 7월 15일(10월 초),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을 갖는다. 보편적인 특징인 7일 동안의 화제와 8일 째의 성회가 있다. 역시 노동은 금지된다. 특별한 여호와의 절기로 평시에 드리는 것과 다르게 더 헌물 한다.

2 초막절은 과실과 나뭇가지로 풍성하게 가져간다.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7일 간 초막에서 거주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너무 중요하다. 애굽에서 인도하신, 앞으로 인도하실 분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레23:33-44)


1 등잔 위의 불을 정리하고 지키는 것 또한 영원한 규례다. 가장 좋은 감람유를 쓰고 항상 지켜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이 성막과 성막 안의 사람을 비춘다. 가장 좋은 것, 그 빛으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비추고 있나?

2 12개 떡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며, 이 화제는 자손들을 위해 드리는 것이다. 이 제물은 아론 가족의 몫이 된다. 이 떡이 거룩하고, 떡을 주는 것도 거룩하다.(레24:1-9)


1 신성모독 죄는 무엇으로 부터 왔는가? 애굽인과 싸우던 유대인의 자손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애굽인을 저주한 사건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하는 일에 쓰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며, 공동 처형해야 할 대죄악이다.

2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복수법은 피해자의 보상받을 권리와 가해자의 보상해야할 의무가 지켜지도록 중재하는 법이다. 법적 균형인 것이다. 다만 예수는 이것을 넘어 사랑할 것을 요구하신다.(레24:10-23)


1 가나안 입성 후, 첫 해는 안식년이다. 6년간은 파종과 수확을 하고, 다시 7년째에는 안식년이다. 안식년의 수확은 개인소유에서 공동소유로 바뀌며, 이것이 거룩이다.

2 희년은 7번의 안식년 후 다음 해, 곧 50번째 해. 모든 주민에게 자유를 공포한다. 빼앗겼던 땅을 되찾고, 강제로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다.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 이것이 거룩이다.(레25:1-12)


1 부득이하게 소출이 없어 땅을 팔게 되면,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계산해 팔고 사야 한다. 이웃, 형제를 속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희년이 되면 모든 땅은 원소유주에게 돌아간다. 영원히 집 없는 자도 없고, 독점하는 자도 없다.

2 이렇게 희년을 지키는 것은 안전히 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지키지 않았고 우리는 수천 년 동안 부동산의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안식년에 파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충분히 주시는 것을 알라.(레25:13-22)


1 토지는 하나님의 것, 부동산 국유화는 개신교적 문화다. 임대가 가능한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부동산이다. 희년, 곧 50년이 되면 그 임대 계약은 잔금지불의 여부를 묻지 않고, 원수여자에게 반환된다. 모든 이에게 땅이 있었다.

2 자신의 땅을 임대 후, 빚을 갚고 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형제가 가난해 땅을 찾지 못하고 있으면 다른 형제가 빚을 갚고 땅을 다시 찾게 해주어야 한다. 서로의 땅을 지켜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는 것도 형제애에 속한다.

3 희년의 토지임대는 50년에서 사용한 연수를 빼고 돌려받을 때 임대가 종료된다. 단, 성벽 내의 가옥은 1년 내에 빚을 갚지 않으면 돌려받을 수 없다. 성벽 없는 가옥은 물론 국유지로 희년에 돌려받을 수 있다.

4 레위족속의 유일한 기업은 토지다. 따라서 그들의 토지는 꼭 희년에 돌려줘야 한다. 성읍 주위의 들판은 레위족속의 것으로 대여하지 못한다.

5 땅이 하나님의 것이며, 영원히 소유하지 못한다는 전제 아래서 부동산 투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세계 경제를 휘청하게 만들고 있는 주원인이기도 한 부동산의 거품, 그것은 공동소유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시대의 거품이다.

(레25:23-34)


1 형제의 가난은 착취의 이유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야할 이유다. 하나님도 애굽에서 거지같은 우리를 건져내신 분이다. 이자나 이익을 낼 생각으로 돈이나 양식을 꾸어주지 말아야 한다. 형제가 가난해서 종이 되어도 종처럼 대하지 말라.

2 그러나 희년이 되면 형제들을 가족과 땅으로 돌려보내라. 다시 종으로 파는 것은 파렴치 하다. 출애굽으로 살리신 하나님은 종에서 해방시키도록 하시는 하나님! 가난하고 종 된 형제와 함께 사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 있다.

3 그러나, 형제는 대신 차라리 이방인을 종으로 살 수 있으며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 하나님의 복지법 밖에서도 잘 먹고 잘 사는 이방인을 종을 삼는 것도 황당하지만, 그들의 최후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레25:35-46)


1 가난하여 빚을 갚지 못하면, 채권자의 집에서 종 생활로 갚을 수 있는 관습이 있었다. 형제의 가난은 결코 개인사가 아니다. 형제가 종이 되면 친인척이 나서서 해방시켜줘야 했다. 물론 채무자가 추수할 후 해방될 수 있었다.

2 이주민에게 종으로 팔려가도 법은 같다. 빚의 상환은 희년까지 남은 해의 수로 계산한다. 따라서 남은 해가 적으면 덜 갚아도 된다. 또한 종이라고 종처럼 대해서는 안 되고, 고용된 인부로 대해 주어야 한다.

3 희년이 되면 빚이 남았어도 종을 해방시켜줘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부터! 돈과 제도의 노예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리는가?(레25:47-55)


1 우상숭배금지와 안식일 준수는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물질의 주인이 여호와임을 선포하는 의미로써의 희년은 우상숭배금지와 상통한다. 이웃사랑의 희년제도를 지키면 열매가 풍성하고, 계속 추수하며, 배불리 먹는다.

2 하나님은 평화를 주시는 분. 원수의 칼을 막으시고 물리치신다. 또한 직접 우리를 번성케하시고 창대케 하여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우리가 희년제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 안에서 우리는 그 모든 복을 누릴 것이다.

3 우리 중에 성막을 세우시고, 우리 중에 행하시므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백성 되게 하신다. 우리가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 같이 우리에게서 멍에의 빗장을 부수어 바로 서서 걷게 하신다.

4 신분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 둘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우리가 그 약속을 따라 이웃에게 행해야할 약속이다.(레26:1-13)


1 청종치 아니하면

= 모든 명령 준행치 아니하면

(내 규례를 멸시하며 내 법도를 마음에 싫어하여)

=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 진대

폐병, 질병, 실명, 쇠약, 흉작, 대적에 의한 환란...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 다니는 삶

2 청종치 아니하면(재앙을 줬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죄로 인한 7배의 징벌

스스로 가졌다고 착각한 힘의 교만에 대한 심판

풍요로운 하늘과 땅이 철 하늘과 놋쇠 땅으로 변해, 수고가 헛되리라. 그 땅은 열매 맺지 못하리라!

3 청종치 아니하면(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로 인한 7배의 징벌

들짐승으로 자녀, 가축 등이 죽고, 황폐케 됨

4 그래도 돌아오지 아니 하고 대항하면

하나님도 너희를 대항하여

죄로 인한 7배의 징벌

직접 칼을 가져다가 언약을 어긴 원수를 갚고, 염병이 돌게 하고,

대적의 손에 넘기우고, 양식을 끓어 아무리 해도 부족할 것이다.

내~, 나의~로 수식된 것들은 명령, 규례, 법도, 계명, 언약 등이다. 하나님의 것에 반하였을 때 하나님은 재앙의 주체가 되어 우리를 심판하신다. (레26:14-26)


1 그토록 했어도, 청종치 아니하고 대항하면

하나님도 진노로 대항하신다.

죄로 인한 7배의 징벌

고대 근동의 식인 풍습을 따라 기아 상태에서 자식을 먹는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산당과 분향단을 부술 것이다. 시체를 우상 위에 던지고 마음으로 싫어할 것이다.

성읍은 황폐케 되고, 성소는 황량할 것이다.

향기로운 냄새는 흠향하지 않을 것이다.

땅을 황무하게 될 것이다.

민족은 흩으실 것이다.

이를 보고 원수가 놀랄 것이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랑하던 모든 것들이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 위에 신이 되려고 한 벌이다.

2 포로로 살 동안에는 오히려 땅은 안식한다.

3 스스로 신이 되려 한 자들이 마음이 약하여 바람에 날린 잎사귀 소리만 들어도 놀라 도망할 것이다. 칼에 도망하듯,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다.

맞설 힘이 없기 때문이다. 힘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 민족 중에 망하리라. 원수들이 그 땅을 삼키리라.

4 죄로 인해 쇠잔케 되는 것이라.

조상의 죄로 쇠잔케 되는 것이라.

조상같이 쇠잔케 되는 것이라.

(레26:27-39)


1 하나님을 거스른 죄, 자기의 죄악,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라.

2 하나님께 대항한 것이 원수들의 땅으로 끌려가게 된 이유임을 깨닫고 겸손히 형벌을 받으라.

3 그리하면 야곱, 이삭, 아브라함과 맺은 그 땅 위의 언약을 기억하리라.

4 내 법도를 싫어하고, 규례를 멸시했기에 땅에 사람이 없다.

땅이 안식을 찾았다.

자기 죄악에 대한 형벌을 잘 받으라.

5 그런즉, 원수의 땅에 있을 때

내가 그들을 내버리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아주 멸시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한다.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

6.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그들의 조상과의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이로써) "나는 여호와니라." (레26:40-46)

따라서 율법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원은 그 값을 반드시 치른다. 사람의 값은 성전 봉사에 대신하여 드려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값으로는 그 나이에 따라 5에서 50 세겔까지 낸다. 단, 가난한 자는 그 형편에 따라 다시 정할 수 있다. 50세겔은 노동자 1년 치 임금의 몇 배에 해당하므로 이러한 서원이 보기 드물었을 것이다.

서원 제물로는

1) 가축이 좋다. 거룩하다. 열등한 것으로 바꾸지 못 한다. 바꾸는 것이 건강한 가축이면 둘 다 거룩하다.

2) 부정한 가축, 곧 흠이 있는 가축을 가져오면 제사장은 우열 간에 값을 정한다. 무르려면 20%를 더 내야 한다.

3) 집을 가져오면 제사장은 우열 간에 값을 정한다. 무르려면 20%를 더 내야 한다.

서원 안에도 희년의 정신이 담겨져 있다. 제사장에 대한 배려도 있다.

서원 자체가 세워지기도, 지켜지기도 힘든 일이다. 26장에서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신다는 말과 비교된다. 하나님은 세우기도, 지키기도 힘든 언약을 우리를 위해 세우셨다. 그리고 지키신다.

(레27:1-15)


밭을 서원 제물로 바치는 경우

마지기 수대로 값을 정한다(이하 정가).

희년에 바쳤으면 임의로 정가

희년 후에 바쳤으면 남은 연수대로 정가

바친 밭을 되찾으려면 20% 더 값을 치러야 한다.

되찾지 않은 땅은 희년에 제사장의 기업이 된다.

만일 구입한 땅, 곧 자기 기업이 아닌 땅을 바쳤으면,

희년에 그 땅은 원주인에게로 돌아간다.

밭을 기업이라 표현하며, 그 규정이 유별나다.

특별히 희년법 안에서 그것이 설명되어진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단,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제사장의 것이 된다.

희년의 희망과 자기 기업에 대한 책임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레27:16-25)


가축 중 처음 난 것만 여호와의 것이다.

상태가 안 좋으면 20%를 더 지불하고 되찾아가라.

되찾지 않으면 모세가 정한 값대로 팔아라.

여호와께 완전히 바친 것은 사람, 가축, 기업의 밭을 막론하고 지극히 거룩하며 되찾지 못한다. 사람은 되찾으려 하면 반드시 죽는다.

땅의 10%, 곧 그 땅의 곡식의 10%는 여호와의 것이다.

누군가 십일조를 되찾으려 한다면 20%를 더 내야 한다.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를 지나가는 열 번째의 것마다 드리되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지 말라. 바꾸면 둘 다 되찾지 못한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레27:26-34)


아, 레위기 묵상이 끝났다. 이해한다고 쉽게 쓰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왜 레위기는 희년과 십일조로 마무리되어지고 있을까? 법령이라면 레위기는 그 끝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이 맥락이 있는 책의 일부라면 이것은 분명한 의미를 준다. 희년과 십일조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하나님을 주인 삼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 나라는 당장의 현실이며, 기쁨의 축제 현장이다. 2012년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