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트 린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윌리엄 윌버포스의 생애> 요약과 견해
원서
God's Politician; William Willberforce's Struggle, 1987, Helmers & Howard Publishers, Inc.
저자: 가트 린(Garth Lean)
번역출판
역자 송준인, 2001, 도서출판 두란노.
찰스 콜슨의 서문
10쪽 많은 역사가들은 윌버포스가 노예 무역의 금지라는 인기 없는 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윌리엄 피트에 이어 수상직을 계승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였다고 말한다.
11쪽 하나님과 윌버포스의 관계가 그의 정치적 경력을 고양시킨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정의의 기준에 대한 그의 순종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거인들의 발자국>의 저자, 한홍의 추천사
13쪽 1787년 10월 28일, 27세의 젊은 영국 국회 의원 윌리엄 윌버포스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두 가지 큰 목표를 두셨다. 하나는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
15쪽 1833년 7월 27일, 윌버포스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세운 지 56년 만에 영국 국회는 노예 제도를 영원히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사흘 후, 윌버포스는 "나로 하여금 영국이 노예 제도를 통해 얻는 2천만 스털링의 돈을 포기하는 날을 목도하고 죽게 하시니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강남의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18세기와 19세기 걸쳐 벌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읽는 내내 감사함이 넘쳐났다. 영화 Amazing Grace를 통해서 알게 된 윌버포스에 대한 동경은 음과 양을 모두 보여준 이 책을 통해 더욱 깊어져 버렸다.
윌버포스는 당시 감리교인들을 영국 국교회가 이단으로 몰아세우던 시대에 스스로 감리교인이 된다. 그의 시대는 종교개혁이 진행 중이던 시기였으며, 그는 종교개혁이 정치에서도 일어나게 만들었다. 존 웨슬리, 조지 윗필드, 존 뉴턴 등이 그에게 영감을 준 영적 멘토였다. 유니테리언, 시오필러스 린시의 기독교 윤리 관련 설교도 한 때 즐겨 들었다.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자연스럽게 횡행하던 뒷돈을 주지 않고 헐에 이어 요크셔에서도 의원직을 얻어 낸다. 그러나 아이작 밀너를 만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한 그는 정치계를 떠나고 싶어 했다. 그때 존 뉴턴을 찾았는데 그는 윌버포스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을 주님의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국가의 유익을 위해서 길러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80쪽 이런 판단은 윌버포스에게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 그리고 개인의 성결과 세계를 위한 헌신 사이에서 성숙한 균형을 갖게 해주었다. 이는 기독교의 기본이지만, 매우 신실한 신자들에 의해서 자주 무시되고 있었다.
또한 존 웨슬리는 편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응원했었다.
106쪽 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계속 싸우십시오. 미국의 노예 제도까지도, 때가 되면 해 아래서 이루어진 가장 비열한 짓이라 할 수 있는 노예 제도가 그 앞에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윌버포스는 하나님의 정의를 정치적인 현실에 바로 적용시키는 대담함을 보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당시 부패했던 영국이 지닌 마지막 양심이 신앙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99쪽 "저는 아무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이 끔찍한 노예 무역이 의회의 권위 아래서 시행되도록 방치했다는 점에 대해서 영국의 전 의회와 더불어 저 자신을 참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는 유죄를 인정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우리 자신들만 무죄를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당대 최고의 웅변가였던 그가 사용했던 호소력 짙은 발언은 '우리'라는 말에서 나온다고 생각된다. '너'라고 말하면 기분은 나쁘지만 아무도 듣지 않다. 그런데 '우리'라고 말하는 순간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의 전기를 읽다보면 정치인에 관한 글인가, 목사에 관한 글인가, 혼돈이 될 정도이다. 실제로 그는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자신의 신앙을 정치 철학 삼아 현장에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161쪽 "나는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을 가장 잘 지켰을 때,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었고, 또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었습니다."
204쪽 신약 성경뿐 아니라 구약 성경에도 흠뻑 빠진 그는, 국방이 군사적 대비에 의존하는 만큼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데도 달려 있다고 믿었다. 부언하면, 그는 군사적 대비에 있어서 그 밖의 다른 모든 방법들에 대해서는 정열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실제적 견해>라는 책을 쓴다. 이 책은 정치인이 쓴 종교 서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또한 회심케하는 책이 되었다.
219쪽 만일 어떤 나라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힘 자라는 데까지 각자의 견해를 촉진시키고 행복을 증진시키려 애쓰면서 맡은 바 의무를 부지런히 수행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면, 모두가 인간 사회의 훌륭한 틀 안에서 적극적이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알력이나 부조화도 없을 것이다. 시민 생활이라고 하는 기계 전체가 아무런 방해나 혼란 없이 잘 작동할 것이며, 운동의 경로가 천체의 조화처럼 순탄할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포교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나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저지르고 있는 방탕함 때문에서라도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고 봤다.
185쪽 그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인도 입국 금지를 '영국의 도덕심에 가장 더러운 오점이라 할 수 있는 노예 무역 다음으로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정상적인 포교 활동에도 힘을 썼다.
188쪽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될 때 기독교의 위대한 창시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주는 것이 기독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궁핍한 자들을 구제하며,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찾아가기를 기뻐할 때 비로소 기독교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9쪽 "강요와 기독교라니! 말 자체가 서로 모순되고, 생각 자체가 양립될 수 없다."
흑인들뿐 아니라 소외계층들과도 차별 없이, 대우 해주며 살았던 귀족, 윌버포스는 역시나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235쪽 그러나 윌버포스는 언제나 '나의 자녀들의 영적인 관심이 나의 최고의 목표'라고 느꼈다. 참으로 그는 자녀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그에게는 클래펌 공동체가 있었다. 뜻이 맞는 이들과 같이 살며 밤낮으로 토론하는 공동체였다. 후에 이 공동체는 윌버포스 진영이 내각이 된다.
122쪽 앤스티 박사는 윌버포스와 그의 친구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의 죄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사함받았다는 확신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악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세상에 있는 악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것들과 싸우는 것이 소명이라고 느꼈다.
그가 프랑스 혁명을 반대했다는 것은 조금 놀라웠다. 그 이유가 종교 때문이였다는 점은 더욱 놀라웠다. 그는 정말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역사에 길이 남을 정치인이 되었던 것 같다.
222쪽 윌버포스는 프랑스 유혈 혁명과 무신론 혁명의 배경을 반대하는 글을 썼다.
그외 오점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언론 탄압법, 노동 조합 금지법에 찬성하고, 인권 보호 영장 청구권은 유예시켰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전쟁으로 혼돈스러운 사회 속에서 내분을 막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의 정치적 활동이 종교적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다음 이유가 더욱 그럴싸 하다.
249쪽 윌버포스가 억압적인 법안들을 지지한 대부분의 경우는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간에 대부분 무신론적인 권위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좀 더 인간적인 이유도 있다.
256쪽 의심할 바 없이, 그도 역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덜 보수적이기보다는 더 보수적인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소요의 원인을 선동가들의 탓으로 돌리는 시드머스와 같은 옛 동료들의 손쉬운 희생자가 되었다.
그의 노년은 개혁가 이기보다는 다시 일반적인 정치인으로 돌아간듯한 면이 있어서 아쉽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정의를 믿고 실천한 유일무이한 영웅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반론하지 않을 것이다.
134쪽 18세기의 유명한 교회사가인 오버튼(Overton)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라도 시대정신을 초월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영적인 영웅이다. 분명한 것은, 어떤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없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정치적 문제의 책임은 국회 의원 뿐 아니라 국민이 진다. 단지 선거 때만 반짝 관심을 갖지 말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실천되도록 관심을 이어 가야 할 것이다.
287쪽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the art fo the possible)'이라는 말로 정의되어 왔다. 윌버포스는 특유의 끈기로,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행한 모든 일의 근간이 된 영적 요소로 말미암아, 처음 시도할 때에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것들을 미래에는 몇 번이고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바로 그것이 그의 시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시대에 필요한 정치적 수완이다.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추천합니다.
관련기사:: 우리가 윌버포스를 읽어야 하는 까닭(윌리엄 윌버포스 <위대한 유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3652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찬호 <사회를 보는 논리> 요약 (0) | 2013.03.11 |
---|---|
김은식<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요약과 견해 (2) | 2013.02.18 |
필립 얀시 <하나님, 내 마음이 상할 때 어디 계셨습니까?> 요약 (0) | 2013.02.04 |
존 화이트 <탁월한 리더십> 요약 및 견해 (0) | 2013.01.28 |
조쉬 맥도웰 <좋은 아버지> 요약 및 견해 (0) | 2013.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