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Where Is God When It Hurts?
출판: 1977, Zondervan
저자: Philip Yancey
번역판: 1993, 도서출판 엠마오
역자: 신혜숙
추천합니다.
고통에 대한 막연한 신앙은 자칫 우리의 신앙을 샤머니즘으로 바꿔 놓을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고통을 선과 악의 결과를 치부해버립니다. 고통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기를 권면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존재와 부재 가운데 고민하고 씨름했던 필립 얀시의 책을 통해 고통에 대한 이해는 꽃을 필 것입니다.
부탁말씀
오타를 발견하시면 알려주세요.
1. 언제나 부딪히는 문제들
p.12 C. S. Lewis조차도 그의 아내가 골수암에 걸린 것을 보자 자신의 논지의 중요성을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어려워짐을 깨달았다. "당신이 진정으로 믿었던 사실의 참과 거짓을 삶과 죽음의 장 속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가서야 진정으로 그것을 믿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제1부 고통과 같은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 누구도 원치 않는 선물
p.19 이(*고통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들이 가지고 있는 보호적인 기능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신경 체계와 그 안에 내재한 수백만 개의 통증 감지기들은 인체 기능 중에서 가장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불쾌한 기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중략)
고통은 확실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고통에 관한 조각품이나 찬가 혹은 시들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p.23 손가락 끝의 세포는 3그램의 압력만으로도 그것을 쉽게 감지해 낸다. 그러나 이 부분이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적어도 300그램의 압력이 주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위의 수치는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p.26 고통이 없다면 우리의 생명은 위험으로 가득 차게 되고 스포츠나 취미 활동과 같은 기본적인 즐거움마저 갖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할 것이다.
p.28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고통은 각 조직망 사이의 의사소통 기관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것은 인체의 다양한 부분을 지켜주고 동시에 인체를 보호한다는 대의 아래 각 부분들을 통합시킨다.
3. 고통이 없는 곳-지옥
p.31 브랜드 박사는 연구를 통하여 한센 병에 걸린 사람들의 99퍼센트 정도에게 있어 한센 병은 단지 신체의 각 극단 부위를 마비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잇따른 세포의 파괴는 오직 고통의 감지 체계가 망가진 것에만 기인한다.
4. 고통, 그 이후 환희
p.45 우리가 가진 왜곡된 관점은 고통과 쾌락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어서 결코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는 신화를 강화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우리의 생활 양식이 매일의 삶을 통하여 이것을 되뇌이는 것이다.
p.47 현세대의 문화는 적극적인 감각의 세계, 특히 고통과 관련된 감각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이탈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p.49 매우 뜨거운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조금씩 담그는 과정은 고통과 쾌락 사이의 관련성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p.52 완전한 고통과 완전한 쾌락이 불과 2초 사이에 동시에 발생한다. 하나는 다른 하나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역도 선수에게 방금까지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물어 보라. 그는 당황한 모습으로 당신을 응시할 것이다. 기쁨으로 충만해진 그에게 고통이라는 것은 이미 망각의 저편으로 건너간 것이다.
p.55 행복은 내가 자신에게 한 투자에서 나오는 뜻밖의 보너스처럼 하나의 부산물로서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투자라는 것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고통이 없는 기쁨이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5. 오점으로 얼룩진 지구
p.61 어찌하든 고통과 고난은 인간 자유 의지의 오용의 당연한 산물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선택을 감행할 때 그들의 자유로운 세상은 영원한 부패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p.65 하나님의 대변자로서의 고통은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유리시킨다. 나는 그러한 비참함을 세상에 허락하신 하나님을 증오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통은 나를 하나님께 인도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은 지금 이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실 때 나는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고통으로 점철된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한 완전한 성소를 하나님께서 만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p.65 인간은 고통이 없는 세상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배반을 선택하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아담의 후예인 우리들도 선택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혹은 이 세상의 모습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문책할 수도 있는 것이다.
6.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시는가
p.75 하나님은 대부분의 경우 선한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고 사악한 자들에게는 벌을 내리신다는 일관된 목적 하에서 세상에 개입하신다. 때때로 하나님은 그런 목적 하에서 고통을 허락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죽음까지도 불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그들을 전쟁에서 패하게도 한다.
p.79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고난에 관한 고전적인 견해를 반박하셨다. 제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한 사람을 가리켰다. 동정으로 혀를 끌끌차면서 제자들이 물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자기의 죄로 인함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로 인함입니까?" 예수께서는 무뚝뚝하게 말씀하셨다. "그 누구의 죄도 아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이 짐작하는 것처럼 병을 통하여 그 사람이나 그의 가족을 "벌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p.83 사단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보상을 부여하셨고 때문에 욥은 단순히 그의 이익을 선택했을 뿐이라는 이유를 들어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서 하나님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화로운 삶을 허락하셨다는 이유로 욥은 하나님께 성실하였던가? 그 실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훌륭히 증명해 내었다.
p.88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지상에서의 삶을 질병과 절망과의 싸움으로 보내지 않았던가, 그에게서는 운명주의적이거나 체념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따위의 요소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p.89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비그리스도인보다 더 편안하고 더 안전하며 병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가르친다. 이 세상을 움직여나가는 자연 법칙은 전반적으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위하여 계획한 틀에 맞는 선한 법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지구에 산재한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무균의 완전히 밀봉된 우주복을 착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2부 사람들은 극단적인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7. 하나님과 겨루기에 너무 짧은 팔
p.107 "고난 속에서 기뻐하라"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그리스도인은 비극과 고통에 대하여 행복감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정직과 진솔한 감정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기독교는 허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초점은 결국 결과, 즉 하나님께서 삶의 고통으로부터 이루어내신 유용함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내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믿음의 실행과 이 실행이 기쁨으로 그려질 수 있는 과정을 원하신다.
8. 진창 뒤에는
p.135 그녀가 선과 악의 싸움에 대하여 말할 때 나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 사단이 가한 공격을 생각했다. 아기들의 학살, 유혹, 배반, 그리고 마지막인 죽음. 사단의 관점에서 볼 때 승리를 만끽할 수 있는 멋진 금요일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경악스럽고 무시무시한 아들의 죽음을 그분의 가장 위대한 승리로 바꾸어 놓으셨다.
9. 춤추는 나의 발
p.156 나는 심오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요한복음 16:33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10. 다른 증인들
p.168 산상 설교의 선언들은 하류 계층의 자아상을 위한 예수님의 위로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반영하는 진정한 선언들이다.
제3부 고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11. 회복의 두 가지 적
p.180 공포나 무기력 등의 강한 느낌들은 병든 환자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이 질병에 쉽게 감염되도록 하는 기능까지 실제적으로 갖추고 있다.
12. 예비 작업들
p.195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에게 기도드리고 있음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감동시키려는 목적으로 "믿음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불필요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p.196 정신과 의사들과 상담원들은 만약 환자들이 항상 서왔던 받는 위치가 아니라 스스로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면 오히려 치료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199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혼이 충만해야만 한다. 그래야 육체를 초월하여 궁극적인 승리에 다다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항상 육체에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13. 선구자
p.206 예수님의 죽음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초석이고 예수님께서 오신 가장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당신은 예수님의 죽음을 외면한 채 그분을 따를 수 없다.
p.208 그가 인간으로 오셨을 때 그는 정말 인간의 삶을 사셨던 것이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가치있다고 생각하셨다.
p.209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저희에게도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
14. 나머지의 몸
p.217 인체에서 한 세포나 일단의 세포들이 다른 나머지 세포들을 희생시키면서 성장하고 번성하는 현상을 우리는 암이라고 부른다. 계속 번성하도록 내버려두면 결국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암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모든 세포가 머리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것뿐이다.
p.221 우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자비를 위해 기도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난을 당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을 줌으로써 치유함에 이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를 인식하게 되고 머리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15.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
p.222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이나 고통이 없는 이후의 삶의 가능성을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처는 일시적인 것이다. 미래에는 아무런 고통도 없다.
p.232 나는 언젠가는 모든 타박상과 백혈병 세포와 모든 분노와 상처들이 바르게 고쳐질 것임을, 희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굴의 희망을 내보인 모든 사람들이 보상을 받을 것을 믿고 있다.
p.234 하나님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경도된 왕국을 건설하심으로 그들과 연합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때로 부자와 권력을 소유한 자들을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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