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eda Comment
1926년 7월에 이미 전대미문의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운 이 책은 이미 일제시대 때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30년 조선야소교서회(朝鮮耶蘇敎書會)에서 《인도도상(印度途上)의 그리스도》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번역자는 박두환(朴斗煥)이었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고민에 빠져 있다. 어떻게 개독교라는 모욕에서 벗어날 것인가? 또 어떻게 전도의 침체기의 변화를 모색할 것인가? 이 책에 그 답이 있다. "교회 밖의 세상은 기독교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좋은 기독교가 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노동과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선교사로서의 기본 소양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혀져야 할 선교학의 이론과 실제이다. 그리고 인도에서 간디가 미친 기독교 영향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봐야 한다. 마틴 루터 킹은 왜 간디의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한가?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사서 보라.
Summary
콘스탄티노플은 공략을 당하고, 대주교는 강제적으로 블라드미르 황제를 위한 세례식을 베풀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 러시아가 기독교화된 것입니다! p.22
이 '기독교(Christianity)'란 단어는 성서에도 없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이 단어는 뜻이 애매하여 사람들을 혼란시키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그리스도(Christ)를 사용했습니다. p.39
조만간 우리는 '좋은' 기독교를 소개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교 방식이란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좋은 기독교를 소개하는 것은 아무런 가식 없이 만천하에 예수를 선포하는 방법입니다. p.43
긴 신학 논쟁을 거쳐 세워진 우리 서구교회 체계의 어떤 부분은 완전히 다른 환경 속으로 전해질 때 그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입니다. P.59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어린아이와 같이 생각하고, 나병환자와 의지할 곳 없는 사람, 장님을 돌보시고, 또 그의 가슴이 십자가에서 고통 받은 예수와 같다면, 나는 어떤 의문이나 조건 없이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것입니다. P.63
"당신은 이 사람들에게 종교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필요한 것은 빵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굶주리고 있으며, 그들이 얼마나 야위어 있는지 보십시오. 그들에게 빵을 주지 그러십니까?" P.67
비기독교 신앙도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예수가 없습니다. P.88
우리는 지금 도덕적, 신앙적 우주의 중심에 계신 예수를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P.92
예수 아래에서는 인종주의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는 모든 인류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P.93
간절한 심령으로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배고프고, 목마르며, 아프고, 감옥에 갇히고, 헐벗은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96
통계치나 범주화는 의미가 없으며 누가 그러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 가를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P.99
교회 밖의 세상은 기독교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p.116
만약 미래의 교회에 기독교가 중심에 서고자 한다면, 마땅히 교회는 예수를 닮은 영혼이 그 중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제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인 동시에 우리를 향한 부름입니다. P.116
한 탁월한 힌두교 사상가가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50년 간 선교사들이 하지 못한 일을 간디는 그의 삶과 재판, 그리고 투옥을 통해 이루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인도의 눈을 십자가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p.130
간디는 연단으로 올라와서 《신약성서》를 꺼내 들고는 <산상수훈>에 대해 읽고 이렇게 그의 연설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드리는 저의 연설입니다. 이렇게만 행동하십시오.”
그것이 간디의 연설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p.135
남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정부에 대해 간디가 비폭력 저항 운동을 계속할 때였습니다. 그는 계약직 하급 노동자를 위하여 비폭력을 무기로 싸우고 있었는데, 노동자들의 과격함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비폭력 저항을 충고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는 그는 아무 말 없이 투쟁에서 손을 떼고 홀로 단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단식투쟁이 시작되자마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간디에게로 가서 단식을 풀 것을 간청하고 그가 단식을 멈추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고통을 견디는 사랑이 결국 승리한 것입니다. p.138
이전에 기독교를 열렬히 반대하던 한 민족주의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간디를 알기 전까지는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간디의 행동에 깊이 감동받았을 뿐 아니라 진정으로 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한편 간디의 이러한 공헌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생각을 일깨웁니다. p.143
영국에서 노동운동이 널리 퍼지면서, 그 운동의 정신과 가치가 기독교의 복음화 운동에도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기독교를 복음화 하는 데 실패하면서, 결국 노동운동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손실입니다. p.147
나로서는 지금 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백인 카스트제도와 인도의 본래 카스트제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백인들의 카스트제도는 피부색에 기초한 것이고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혈통에 기초한 것이라는, 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p.205
교육문제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인도 남부의 어느 도시에서 강연을 하고 있던 어느 힌두교인이 선교사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여기 있는 청중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내 연설은 종교에 대한 연설은 아니지만, 잠시 다른 말을 좀 하고자 합니다. 만약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생활을 한다면, 내일 당장 인도는 당신들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p.206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을 소개해 주고자 하는데, 그것은 양손을 들고 나팔손을 만들어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p.213
종교는 하나님의 삶이 지상에 구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혼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영이 지상에서 실현되는 것을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종교는 이 영혼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영이 현실에서 역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종교는 하나의 의식행위에 지나지 않게 되며, 그렇게 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종교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p.250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리들과 함께 계실 때 그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증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 살았고, 그의 얼굴을 보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p.332
이름하여 ‘박티(Bhakti)'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그러나 사실은 믿음 그 이상입니다. 이것은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헌신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헌신의 정도를 본인이 대충 결정하는 태도는 본래 ‘신앙’이 지닌 근원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신앙’의 본래 의미를 인도의 ‘박티’를 통해서 다시 복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p.358
기독교를 믿지 않는 한 노동자가 우리 선교사들 중의 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그리스도를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노동자였고 십자가를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노동자들은 그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양 전역에 불고 있는 많은 새로운 변화와 운동의 이면에서 우리는 살아 있는 예수의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p.368
그리스도는 여기 인도의 길 한가운데를 걷고 계십니다. 그분이 길가에 조용히 앉아 있을 때, 인도의 민감한 영혼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의 수고와 슬픔을 이해하며, 곁으로 다가와서 자신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p.371
인도의 남부의 한 대학에서 현대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한 힌두교인 교수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현대 역사를 공부해 보니 오늘날 세계에는 도덕적인 행동을 가늠하는 중심축(Moral Pivot)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상의 도덕적 삶은 그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그 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중략)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인 음모나 착취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향력은 분쟁과 싸움을 불러일으키지만 예수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는 치료와 연대감, 그리고 구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서양 철학에 능통한 인도의 한 뛰어난 철학자의 증언을 한 번 들어 보십시오. 나는 그의 비판이 날카로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질문하기 전, 먼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교수님,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인도사람들은 예수가 이 땅에 오기도 전에 이미 아주 높은 단계에 계신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가장 높은 단계에 계신 절대자의 표현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인성이라는 완전한 힘으로 우리를 정복했습니다.”
예수는 종교적인 기교와 명석함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지닌 매력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는 시저의 무력을 빌리지 않고서 우리를 복종시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구원자의 모습을 찾았고 그래서 그는 구원자입니다. 그는 구원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p.373-374
옮긴이의 말 - 김상근
1938년 12월 12일자 <타임>지는 스탠리 존스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소개했고, <크리스천 센추리>지는 그를 '가장 신뢰받는 선교학의 전문가‘이며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인도 문제 전문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근본주의적 선교신학자들은 그가 복음의 순수성을 인도의 전통과 맞바꾸어 놓았다고 비판한다.
또 일부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스탠리 존스의 이론이 더 철저하게 인도문화의 종교를 인정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p.390
스탠리 존스는 철저한복음주의자로 인생을 살았지만, 그의 선교방식은 매우 혁신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의 선교는 한 마디로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도인들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는 ‘기독교와 서구문명은 같다’는 등식을 과감히 깨뜨린 선교사였다. 그는 미국과 유럽문화에 의해 채색된 기독교를 소개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기독교가 인도인을 위한 기독교로 정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기독교의 범위를 서구교회로 한정짓는 것을 반대했다. 인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미국이나 유럽의 교회를 이식하거나 복사판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변함없는 주장이다. p.392
1940년에 세워진 미국 뉴욕시의 할렘(Harlem) 아슈람은 차별 받고 있던 흑인들을 위한 인권회복과 이민자로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던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에 대한 법률적 보호를 주창하는 등 비폭력과 평화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미국의 민권운동을 이끌며 흑인해방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스탠리 존스가 쓴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를 읽고 비폭력 운동의 기본정신을 배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p.396
1938년 인도의 탐바람(Tambaram)에서 열린 국제선교협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총회에서 스탠리 존스는 주제 발제를 맡았던 헨드릭 크래머(Hendrik Kraemer)의 칼 바르트적인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선교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p.397
이 책은 1926년 7월에 초판이 출간됐는데, 같은 해 영국에서만 13쇄를 거듭 찍어야 할 만큼 공전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밀려오는 책 주문으로 같은 해 11월에만 무려 5번의 재쇄를 찍었던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수백만 부 이상 팔려 나갔던 이 책은 이미 일제시대 때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1930년 조선야소교서회(朝鮮耶蘇敎書會)에서 《인도도상(印度途上)의 그리스도》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번역자는 박두환(朴斗煥)이었다. 이번에 평단문화사에서 번역 출간되는 책은 원전을 참고하여 다시 새롭게 완역한 것이다.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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