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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이 좋아>를 읽으니, 우리도 당신이 좋아!

<난 당신이 좋아>를 읽으니, 우리도 당신이 좋아! 


[저자는]

 15년간 IVF 간사로 섬겼으며, 선교한국 조직위원장(중보기도팀장 경험), IVF 학원사역부 대표간사, 코스타 주강사로 활약하였고, 현재 다드림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사실 처음 중간까지는 너무 슬퍼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책을 보면 그동안 아내를 병간호하며 지낸 '6년'이란 시간이 유난히 많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세월이 그만큼 저자에게 힘들었지만 소중한, 중요한 시간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모님이 아프신 것이 2005년부터였으니 이제 '8년'째이군요. 그 시간동안 신앙인으로, 아빠로, 또 남편으로 살아가는 그 어느 것 하나 놓지 않고 책임감 있게 싸워준 김병년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아 이제는 아내가 있음에도, 가족이 있음에도 마음에 병들어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우리와 같은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눈물만 흐르다가 책을 덮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함께 나누고 싶은 구절들, 고통 속에 빗어낸 지혜들이 많은데, 그 중 몇 개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

 

p.140 회의(懷疑)하는 과정을 겪어 보지도 않고 "응답 받은 줄로 믿습니다"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응답을 얻기 위해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을 받고 나서 확신을 얻었다. 응답 이후에 확신이 온 것이다. 그러니 응답이 오기도 전에 먼저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간절한 바람에 대한 의지적 신념일 뿐이다.

 

p.143 해답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음은 오직 믿음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게 믿음을 사랑으로 바꾸도록 요청하고 계신다. 그러기에 나도 내 삶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뛰어넘어 매일, 하루, 한순간을 사랑해 보려고 한다. 아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p.148 정직한 기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너무 쉽게 단정해 버린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자연스런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 착각하고 있다.

 

p.160 사랑하기 때문에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외아들'을 주셨다. 이것이 그분의 사랑이다. 내 상황에 필요한 능력을 주시기도 하고 안 주시기도 한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선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구절들입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 내에서 믿음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표현들이 설교에 가득합니다. 구원파나 샤머니즘과도 흡사한 믿음에 관한 설명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신앙에 대한 이해는 성도들을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시킵니다. 고통 속에 있던 분이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모든 가르침을 깨고, 이렇게 죄에서 자유케하는 예수님의 지혜를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믿음, 그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책 안으로 가시죠.


[믿음은 함께하는 것]

p.136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쓰러진 아내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교회를 하나 되게 했다. 온 성도들이 하나 되어 아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교회의 기초를 쌓았다. 연약한 아내를 중심으로 우는 자들이 모인다.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를 받는다. 낮아짐은 이렇듯 깊은 위로를 준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경계의 빗장을 풀어 주고 쉬도록 한다. 연약한 자가 강한 자를 안아 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린도후서 4:7)

 

p.177 "항상 기뻐하라" 앞에 나오는 "항상 선을 따르라"(15절 하)는 말씀은 거의 빼먹는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과 더불어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15절 상)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성경을 왜곡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p.177 우리가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는 '선택의 순간'이다. 예를 들어, 두 가지 직장을 놓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경우가 있다. 이때 과연, 둘 중 어느 한 곳만 하나님의 뜻이고, 다른 곳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뜻은 어느 직장으로 가든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고 합법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배우자를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만나든지 사랑하며 섬기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그렇다' 또는 '아니다'로 확인하려 해선 안 된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두려움만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자신이 그때 선택을 잘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다.

 

p166-167 고난은 고난당하는 자와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아픔 때문에 회개도 하고, 낫기 위해서 온갖 애를 쓴다. 그러나 겪고 보니 고난당하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와 함께 있어 줄 친구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다.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연약한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가 버림받고 잊혔다는 고립감에 빠지지 않도록, 함께함으로써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함께'라는 소속감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나는 밤마다 아이들을 엄마 방으로 모이게 한다. 한쪽 손을 붙잡게 하고 만지도록 한다. 큰 녀석은 엄마 오른손을, 작은 녀석은 엄마의 왼손을, 그리고 셋째는 엄마 얼굴을 만지도록 한다. 아내가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아내가 느낄 수 있도록. 사랑은 이렇게 함께하는 것이기에.

 

 

믿음에 대한 재조명은 결국 우리를 참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야할 것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종교적 결벽증을 가진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으로, 또 예수님의 어린 양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고압적으로 거룩한 모양을 가지고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려하지 않았고,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어린 양의 모습으로 성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동행이며 천국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은 함께하러 오셨고(마1:23), 함께 하시겠다(마28:20)고 약속하셨으니까요!

 

 

[고통은 함께 해야 하는 것]

p.169 고통 자체를 악으로 간주하는 이들은 기독교 승리주의의 독단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고통이 축복(승리)이 아니듯, 고통 자체가 징계(패배)도 아닌 것이다.

 

p.174 고통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중에도 겪을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겪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 때문에 겪는 일일 수도 있다. 바울처럼 진리에 순종하다가 겪는 고통이 있을 수 있고, 진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누리는 세상 복락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영원토록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후자는 덧없이 지나가고 아쉬움만 남길 뿐이다.

  신학자 윌리엄 올브라이트(William Albright)의 말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형통해진다는 믿음처럼 진리에서 멀어진 믿음이 없다."

 

p.178 고난 자체를 축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그런데 정말 고난이 축복이라면 누구든지 고난을 선택하도록 도전하고 또 고난을 추구해야 하는데, 우리는 과연 그런가? 고난이 닥쳐왔기에 훈련을 받는 것이지, 훈련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라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폴 투르니에(Paul Toumier)가 말한 대로, 고난을 이기는 과정이 축복이지 고난 자체가 축복은 아니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은,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삶이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p.181 고난의 신비는 고난의 끝에서 우리가 그렇게 사모하던 그분을 대면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p.184 광야는 극복해야 할 곳이 아니라 그저 꿋꿋이 지나가는 곳이다.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광야를 걸으면 인내를 배우게 된다. 소망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법을 배우게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배우게 된다.

 

고난에 대한 깊고도 깊은 통찰력에 '역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고난 받는 자는 교회에서 상석에 앉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십자가의 주인공은 고난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빛과 소금을 살아 생명을 낳는 일이 무엇인가를 선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 김병년 목사님은 우리에게 다시금 고난에 유착된 저주와 승리의 굳어버린 패러다임을 떼어내고 그 의미를 깨끗하게 잘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후기 전문을 소개합니다. 저자후기가 그분의 심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겪은 고통과 종교적 핍박에서 우리 모두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예수님의 제가, 김병년 목사님이 여러분들에게 손을 뻗는 것이 눈 앞에 그려집니다.

 

-저자후기-

이 책은 죽음의 그림자인 육체의 질병 앞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고통을 향한 우리 가족들의 항거가 만들어 내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나의 삶은 죽음에 가깝지만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름답다.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해서"라는 시구처럼, 아픔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배우게 되었다. 고통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했고, 이전에 내가 몰랐던 하나님을 알게 했고, 결국에는 나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했다. 찾아온 고통을 극복하는 법만 가르치는 현실에서 고통을 품는 법을 배웠다. 서두르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법 또한 배웠다.

 

한국교회에서는 현실적인 성공과 병의 치유를 경건한 신앙의 모범으로 여긴다. 신앙과 성공, 믿음과 병고침이 반드시 동반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숨 쉴 공간은 없다. 항상 뭔가 부족하고 잘못된 인생을 살아가는 듯 한 정죄감에 시달린다. 낫지 않는 병 때문에 아픔을 겪으면서도 믿음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낫지 않는 것이 결코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님을 알려 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 투병하는 환자를 둔 믿음의 가족들에게 전한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믿음이라고, 해답은 없어도 살아 있는 것이 믿음이라고, 신앙은 우리에게 고통을 없애는 능력만이 아니라 고통을 품게 하는 능력도 준다. 고통이 삶을 묶었지만, 믿음은 고통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삶의 아름다움을, 부부간의 사랑을, 자녀양육을 그리고 성도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하는 진실한 믿음의 친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책은 짧고, 읽기가 편하고 좋습니다. 선물용으로 너무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