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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가라, 신과의 대화. 종교적 고민이 담겨있는 두 영화.

<신과 함께 가라>, <신과의 대화>, 두 영화를 보다가 종교적 고민에 빠졌다




2002년 작으로 독일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찬양과 기도 중심의 수도 생활을 하는 3인의 이야기를 그린 <신과 함께 가라>와 2006년 작으로 미국을 배경으로 고생 끝에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받아 책을 쓰고, 그로 성공하게 된 한 작가의 이야기를 그린 <신과의 대화>를 비교해서 봤다. 




먼저 <신과의 대화>는 기독교 내의 신비주의가 떠오른다. 사람들의 고뇌 깊은 질문들에 대한 모든 대답을 신과 직접 대화한 작가가 대답해준다는 설정에서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신비주의을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사랑의 힘'을 더욱 강조한다. 지난 노숙자로서의 삶이 결국 위대한 작가를 만들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리고 <신과 함께 가라>는 신성모독 문제가 발생했던 영화로 성적 묘사가 강한 것이 문제였다. 수도사들은 여행을 하면서 3가지 유혹을 받는다. 가족, 지식, 성.  그러고 나서 다시 자신들의 교리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지만 결국 성에 유혹 받은 어린 수도사는 자퇴하게 된다. 



두 영화는 각각 '직접 계시'와 '교리 수호'라는 종교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두 문제 다 현재 기독교가 가진 약점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직접 계시'나 '교리 수호'는 결국 기독교에서는 교리의 문제로 본다. 감동을 주고, 삶을 바꿔도 그것이 '교리'에 어긋나면 결국 기독교의 것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리는 것이 일반적인 이단 판단의 방법이다.




'직접 계시'를 받아들인다고 '교리 수호'를 주창하던 기독교가 개방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폐쇄적 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수천 년 동안 쌓아온 기독교의 역사적 뼈대이다. 




두 영화의 차이점은 '직접 계시'를 받는 <신과의 대화>에서는 그 계시가 공감대를 불러오고 많은 사람들이 그 계시로 위로받고 회복된다. 그렇지만 <신과 함께 가라>의 '교리 수호'는 결국 가족, 교회, 성을 떠나서야 안정을 취한다.  


  


그렇다고 '교리 수호'보다 '직접 계시'를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단정해버릴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소스를 얻어 내 생각을 한 번 정리해 본다. 




일단 나는 '직접 계시'를 믿는다. 그러나 '직접 계시'를 말하면서 교만한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신과의 대화>에서 독자들이 도전적으로 작가에게 질문을 한다. "너는 계시 받았다고 하면서 삶이 왜 그러냐?" 그러자 작가는 자신은 나쁜 사람, 완전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난 그런 사람의 계시를 믿는다. 겸손한 계시. 그것은 설령 가짜라 하더라도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겸손한 계시는 '일반'이라 보는 것이다.



'교리 수호'도 필요하다고 본다.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교리 수호'라는 미명 아래 많은 분들이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가?  그런 분들의 땀과 피가 여전히 기독교의 역사 줄기 가운데 흐리고 있다. 



다만 '직접 계시', '교리 수호'가 내가 바라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렇다. 나는 종교적 사안들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그것들의 뿌리가 어디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열매가 기독교다. 




'교리 수호', 이 문제는 아마도 건드리면 안 되는 일들로 생각할 것이다. 신학교를 가면 더욱 그런 마음이 굳어진다. 그런데 나는 '교리 수호'가 수도원을 지켰던 것처럼, 교회를 지키는 것이라는 분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돌렸다. 현재 교회는 진리가 말한 대로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자신을 변호하는 일에만 열심을 내어 결국 산 속에 틀어박힌 수도원과 다를 바 없는 상황 속에 있다. 기독교의 문제는 현상들이 아니라 그 현상들이 가져오는 열매들로 판단될 것이다. 그 문제들은 이미 기독교가 썩었다고 결론 내릴만한 것들이 너무 많다. 무엇이 빛과 소금인지 따져 묻고 바로 세워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제 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두 영화 다 종교와 삶에 대한 고민이 담겨져 있다. 교회 안에서 살 것인가?  세상 안에서 살 것인가?  그 표면을 보여줬는데 그 내면이 가진 혼란에 대한 고민이 오래 머리와 가슴 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