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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and Max, 용서와 사랑으로 푸는 사회 병리적 현상

Mary and Max, 용서와 사랑으로 푸는 사회 병리적 현상

찰흙으로 만든 만화영화를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한다. 그 질감을 표현하는 방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때가 있다. 이 영화 또한 그런 나의 상상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도입부 멘트로 시작한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은 호주와 뉴욕에 살면서 서로 편지를 주고받던 펜팔친구였다. 이 둘은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가정환경과 주변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 메리와 맥스는 우연한 계기로 펜팔친구가 된다.

그리고는 정말로 친구가 된 것처럼 서로에게 마음을 다 쏟으며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들은 서로가 입은 상처들이 나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주변 환경들이 그들을 더욱 정신병자로 만들어 간다.

그러던 중 정말 유일하게 신뢰하던 서로에 대한 실망으로 편지 쓰기를 멈추고, 증오하고, 또 한 없이 그리워한다. 그리고 더욱 미쳐 간다.

요즘 사회가 이 영화 속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는 데서 공감이 된다. 정말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의심이 갈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약한 자는 괴롭힘만 당하고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세상, 그 가운데 진정한 우정은 있을까?

영화는 마치 성서처럼 우리에게 해답을 던져준다. "모두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내 마음 속에서 그렇게 이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것은 신의 계시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이상은 무너졌다. 그런데 용서는 끝나지 않았다. 용서는 계속할 수 있다. 그래서 용서는 사랑의 시작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를 사랑한다.

'신께 감사합니다. 친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라고 영화는 마무리 한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용서하고 친구로 부를 수 있다.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