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Searching for God Knows What
번역:: 윤종석
저자소개:: Donald Miller, 21세에 집을 떠나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미국 전역을 여행하다 포틀랜드에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포틀랜드에 정착한 직후 "미국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리드 대학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은 좋아하나 기독교는 싫어하는 이들의 마음을 열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재즈처럼 하나님」은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2년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예수님의 복음을 사랑의 관계로 이야기한 이 책 「내가 찾은 하나님」에서는 보다 깊어진 영성과 하나님 그리고 사람을 향한 그의 열정이 느껴진다.
자유, 재치, 위로, 유머, 솔직함, 친구... 그의 글에 공감한 독자들의 서평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회의하고 넘어지는 신앙 경험이 있다면, 빈틈없는 종교의 틀에 가로막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다면, 냉정한 눈길이 두려워 교회에서는 나눌 수 없는 고민이 있다면, 도널드 밀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책에서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얻은 기쁨과 하나님을 만나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표작인 「재즈처럼 하나님」「내가 찾은 하나님은」외에 Through the Painted Deserts, To Own a Dragon을 출간했다. 이미 유명 작가인 그는 캠퍼스 사역자, 강사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아버지 없는 가정을 돕고 멘토링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들어가는 말
13쪽 서커스가 다 무슨 소용일까? 인간은 왜 대포에서 발사되려고 기를 써야 하나? 군중의 갈채는 왜 이리 덧없는 것일까? 누가 나를 구해 줄 것인가?
1. 좋은 포도주_공식의 실패
27쪽 내가 그에게 "하지만 현실은 고달프거든"하고 말했더니 그는 나에게 "현실이란 좋은 포도주와 같은 걸세. 아이들은 마음이 끌리지 않는 법이지"라고 말했다.
28쪽 물론 그것이 아주 엉뚱한 생각이고 램프 속에 살고 있는 요정 따위야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혹시 우리가 하나님도 이따금씩 소원을 몇 개씩 들어줄 수 있는 요정이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공식을 가지고 정말로 얻으려는 바가 어쩌면 하나님이 아니라 소원일지도 모른다는 의문도 든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관계가 아니라 상황 통제력일지 모른다는 의문도 든다.
31쪽 그분은 항상 일을 휘저으시고 항상 길을 바꾸시고 항상 배를 흔드시어 그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며, 우리에게 쉬운 답이나 요점 정리나 마법의 주문이나 램프의 요정을 의지하지 말고 그분의 인도와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사랑을 의지하라고 가르치시는 분이다.
2. 사이비_오줌 누는 산타
37쪽 내가 느끼기에 종교의 정말 무서운 점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기가 생각하는 분으로 정말로 믿는다는 것이다.
47쪽 부자가 되는 것을 그토록 떠받드는 신이라면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었을 리 만무하고, 복수하는 데 그렇게 혈안이 된 신이라면 인내심이 별로 없을 것이 뻔하며, 서방(西方)을 그렇게 챙기는 신이라면 나머지 세상을 정말로 증오할 것이 분명한데, 나에게는 그것이 썩 좋은 신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 신이라면 텔레비전 전도자들이 다 갖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니다.
3. 거목 같은 발_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56쪽 그래서 나는 제리 폴웰이 텔레비전에 나가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비행기들에 테러당한 이유는 그 건물 안에 동성애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께 어떻게 들렸을지 궁금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귀에 얼마나 성가신 잡음이었을지 궁금하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네 형제를 사랑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고 다른 뺨을 돌려 대고 판단을 받지 않으려면 판단하지 말고 인내하고 친절을 베풀고 혀를 삼가고 힘을 다하여 화평의 띠를 지키라고 하신 것을 떠올릴 때,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그분을 존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60쪽 나는 성경의 하나님, 일각에서 성경을 둔갑시켜 만들어 낸 공식과 요점의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 성경의 하나님, 우리가 성경을 자기 개발 서적으로 읽는 법을 배우기 이전의 옛날 성경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실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66쪽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른 원리의 목록에 동의하기보다는 사랑에 빠지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4. 자유시_전 인류를 위한 완전한 메시지
71쪽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입으로 껄끄러운 사실이라도 말하며 마음으로는 살마들을 위해 돌아다니다가 죽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이것은 정말로 아주 아름다운 일이다.
72쪽 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나 그 밖의 누구도 사랑할 필요가 없다고 믿으며 자랐다. 그저 일정한 내용을 믿고 그 믿는 바를 외칠 의지만 있으면 되었다. 그러나 요한은 우리 믿음의 관계적인 역동을 끌어안은 듯했고, 그것도 무엇이든 빙빙 돌리지 않고 솔직한 말투로 그리했다.
79쪽 굳이 말하자면 진리와 의미의 분리는 위험한 장난이다. 나는 개념의 표현 속에 추론된 의미를 이미 이해하고 있지 않는 한, 개념의 암송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념이 변화를 낳을 수 있으려면 사람의 영혼 속으로 아주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목록이 사람의 영혼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일은 거의 없다.
81쪽 시, 이야기의 생혈과 아픔, 진리를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감정은 시종 무시한 채로, 본문에 있거나 혹은 있지도 않은 사상과 개념을 찾아내고 추론하게 만드는 것이 결국 목록과 도표와 공식이 아니던가.
5. 벌거벗은 그들_나체가 중요한 까닭
91쪽 나무가 햇빛에서 생명을 얻는 것같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받아야만 했다. 예수님은 마치 하나님이 자기 위에 빛나시는 것처럼 자신의 영광이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늘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선하시게 했던 것, 아담을 선하게 했던 것은 그들 위에 빛나시는 하나님이었다.
95쪽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전혀 불안감이 없었지만, 그가 없어지면 대번에 불안감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이와 같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곁에 계실 때는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으나, 관계가 깨어지는 순간에 그들은 그것을 알고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6. 체르노빌의 아이들_하나님은 왜 떠나셨나?
109쪽 우리의 조직신학은 인간의 타락을 기술상의 배신행위로 격하시킨다. 우리는 좀처럼 그것을 관계적인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시각이 실제로 벌어질 일을 왜곡한다고 본다. 내 생각에 하나님의 심정은 볼티모어의 내 친구와 같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견디기가 너무도 괴로우셨을 것이다. 순전한 사랑이 그 사랑의 대상에게 배신당한 후에 느끼는 고통을 우리로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실 법한 일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냥 죽이실 법한 일이다.
114쪽 영(靈)들을 우리의 적으로 선포하고 육신을 입은 사람들을 그 전쟁의 피해자로 선포하는 전쟁 논리만이 유일하게 적절한 전쟁 논리다. 사탄은 우리가 서로 싸우기를 원한다. 물론 언젠가 악이 틀림없이 제압될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우리의 전쟁,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전쟁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우리가 지상의 나라에 느끼는 애국심을 조금이라도 하나님 나라에 맞는 애국심과 용기로 돌릴 수 있다면, 적으로 인한 사상자는 반드시 줄어들 것이다.
7. 아담과 하와 그리고 외계인_타락에 대한 당신의 기분
122쪽 외계인은 말할 것이다. "당신들은 강박증에 걸려 있다. 당신들은 특정한 종류의 옷을 입어야 하고 특정한 차를 몰아야 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말해야 하고 특정한 동네에 살아야 하는데, 무엇이 되었든 그 모두는 다 보이지 않는 계급에서 자기가 더 높아지기 위해서다. 이것은 강박증이다! 당신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자기가 옳다고 느끼려 하고 있다. 허무맹랑한 일이다. 애당초 당신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 인간은 그냥 인간이라는 것을 당신들은 모른단 말인가?
8. 구명보트 이론_이웃을 죽이는 법
140쪽 가치 있는 것들이란 곧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들이고, 가치 없는 것들이란 곧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는 것들이라는 말은 무섭게 들리지만 이치에 맞는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인간이란 누가 자기를 사랑해 주느냐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정말로 들었다. 물론 그 말은 가혹하게 들릴 것이다. 우리는 늘 인간이란, 설령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해도 소중한 존재라고 믿으며 자라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지으셨고 또 성경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아주 분명히 적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바울의 말처럼 그 관계, 곧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면 우리는 하나님 대신에 다른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되고, 만일 그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아주 슬퍼지거나 분노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광이 위태로워진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146쪽 코웬은 주장하기를, 또래의 수용이야말로 교사들과 양호교사의 긍정적인 평가, 좋은 성적이나 지능지수, 심지어 심리 평가들보다도 아이의 성공에 더 확실한 지표가 된다고 한다. 또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저서 「감성지능EQ」(Emotional Intelligence)에서 또래에게 거부당한 아이들의 고등학교 중퇴율은 또래에게 수용된 아이들의 경우보다 2-8배가 높다고 말했다.
9. 예수_보트가 필요한 사람은?
165쪽 예수님은 마케팅 활동이나 수법들을 버리시고 우리의 신앙 체계를 완전히 관계 위에 세우셨다.
192쪽 사실 예수께서 사회의 실상을 둘러보시며 구명보트에 탄 사람들의 두려움에 찬 눈빛을 들여다 보실 때, 그분이 내놓으시는 것은 우리를 경쟁에서 이기게 해 줄 어떤 공식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다.
10. 예수의 복음_원래 공식이 아니었다.
197쪽 성경에 시(詩)가 이야기 속에든 밖에든 그렇게 많고 비유와 이야기가 그렇게 많고 환상과 다감한 서신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어쩌면 인간이 하나님과 경험한 관계의 단절과 그 이후로 이어져 온 불편한 관계의 역사, 나아가 인간이 하나님과 다시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그동안 만족감을 얻을 관계를 찾느라고 자초한 모든 상처를 치유하려면, 반드시 수용해야만 하는 관계적인 역동을 기술하는 것이 성경의 의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복음의 관건은 개념들이 아니라 우리와 예수의 관계가 아닐까.
200쪽 성경을 대할 때 우리는 관계적인 문맥과 동떨어진 신학적인 개념들을 찾느라고 고생이다. 그러나 성경에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본질상 세 가지 지배적인 은유로 기술된다. 목자와 양, 아버지와 자녀, 신랑과 신부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곧 그분의 어머니요 아버지요 형제들이요 자매들이라는 개념도 제시된다. 사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의 회심 경험을 관계적인 은유 이와의 다른 방법으로 말하는 대목이 거의 없다.
11. 구속의 서커스_다리 셋 달린 남자가 수염 난 여자보다 낫다?
221쪽 "누구나 운이 좋아서 다리를 셋 달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그런 복을 받을 만한 짓을 한 게 뭐가 있느냐." 턱수염 난 여자의 말이다.
224쪽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믿는다면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라.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면서 편벽을 보이지 않을 수 있고, 자기 아내를 쉽게 사랑하되 아내에게 자신의 구속(救贖)을 바라지 않을 수 있고, 더 이상 구속이 걸린 문제가 아니므로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고, 돈이 더 이상 점수로 통하지 않기에 현명하게 자신의 돈을 베풀 수 있고, 영적인 실천사항 목록을 체크해 나가는 것이 쓸데없는 추구임을 알기에 공식의 종교를 버릴 수 있고, 자신을 웃어넘길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이 있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 정말로 아주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12. 도덕_내가 너보다 나은 이유
233쪽 물론 도덕관을 이렇게 강탈당한 것은 우리가 성경을 공식으로, 러브 스토리를 신학으로, 급기야 도덕을 규율로 격하시키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규율을 어기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머릿속으로는 할 수 있어도 마음으로는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의 방편이나 신학적인 교훈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불순종할 수 있다.
242쪽 예수님과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본 도덕은 혼란에 빠진 공동체에 들리는 사랑의 목소리, 요란한 언쟁중에 들리는 침착한 이성의 목소리, 살았으나 죽은 세상에 들리는 생명의 목소리, 자기혐오의 대양(大洋)에 들리는 그리스도의 목소리다.
244쪽 동성 간의 결혼과 낙태만이 자신의 도덕의 총합이라고 믿고 의료 분배와 세계 무역과 환경과 이웃 사랑과 빈자의 구제는 경시하는 사람은 당연히 신학적인 자유주의자다. 성경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들만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분명히 구명보트 동기가 작용하고 있고, "우리 팀에 합류하여 같이 싸우자"는 정서가 인간들의 영혼을 멸하려고 사자처럼 두루 다니고 있다.
13. 종교_하나님을 위한 홍보 운동
251쪽 우리가 옳고 그들이 틀렸다고 믿음으로써 구속(救贖)을 얻으려는 위장 폭탄 외에도 종교적인 정보를 많이 앎으로써 하나님께 접근한다고 믿는 위장 폭탄도 있다. 성경이 하나님을 설명해 주는 본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구들의 지식에 견주어 우리의 지식을 테스트하는 퀴즈가 되고, 인간의 우열을 구분하는 사견(私見)들이 된다.
254쪽 기독교 영성의 어려운 부분은 그것이 진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엉뚱한 이유로 그냥 동작을 취하거나 종교적인 행위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258쪽 공식에 의지하고 단계에 의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공식은 우리의 믿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또한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이 아니라 공식 자체를 믿게 된다. 나 자신의 신앙 여정에서 나는 공식을 완전히 무시해 왔다.
258쪽 우리의 구원을 위해 붙들어야 할 하나님도 그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개념의 목록이나 신학이 아니라 인격체이시다.
265쪽 종교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도와주는 것이거니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종교가 만일 우리가 실천사항 목록을 체크해 나가는 방식이거나 구명보트 안에서 우리를 옹호하는 정체라면, 또는 우리의 전도 개념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경륜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이미지와 위신을 세우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종교는 쓸모없는 것이다.
14. 예수의 복음_셰익스피어는 예언자였다
270쪽 우리의 신학의 진리가 성경에 나오는 방법으로 제시되지 않는 한, 과연 우리가 그 진리에 이를 수나 있는지 나는 의아스럽다. 목록들을 작성하는 데 들이는 우리의 모든 시간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이야기를 말하는 법을 배우는 데 들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83쪽 성경의 책장에서 내새에 대한 열망은, 반드시 고생을 떨치고 일종의 행복을 얻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기회로 나타난다. 고생을 떨친 행복도 부산물로 오지만 그것이 목표는 아니다. 성경 기자들은, 가장 긴밀하고 정열적인 연인들이 헤어져 있을 때 재회를 열명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리스도께로 가서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 같다.
맺는 말
289쪽 나는 조직신학을 유익한 길잡이로 보며, 인류의 이야기를 보강하고 설명하되 대체하지는 않는 차원에서 조직신학 공부를 분명히 권한다.
감사의 말
291쪽 포틀랜드 외곽의 선한 목자 커뮤니티 교회에서 다년간 대학부 성경공부를 인도해 온 내 친구 존 맥머레이에게 이 책을 바친다. 존은 훌륭한 성경 교사이며 이 책에 나오는 사고는 다분히 내가 그의 집에서 함께 살던 4년 동안에 자극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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