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견해:: 대학 시절, <예수원 가는 길>이라는 앨범이 상업화된 CCM 음반들 속에서 신선함을 가져다주었다. 그 중에 삽입된 대천덕 신부의 육성, 그 간절한 호소는 대학생이며, 청년이었던 내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깨어나게 했다.
"젊은 세계는 임시적인 세계입니다. 젊은 사람 빨리 자라나서 큰 사람 되니깐 멀지 않아서 이 나라 위해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으로서 살면서 재미있게만 지낼 것 생각하지 말고 모일 때 기도하고 이 나라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서로 대화하면서 같이 기도하면서 이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뜻, 생각해 봐야 하지요. 한국문제 많은데 인도네시아 문제 얼마나 심한지, 타일란 문제 얼마나 심한지, 타일란에서 어린 아이들 팔고 어린 여자를 창녀로 파는 문제 심해요, 저희가 청량리 갈 때 마다 그 창녀 마을 통과해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답답한지 말할 수 없어요. 그 여자는 기쁨이 없어요. 자기 좋아해서 아니고 대부분 돈이 없고 돈 벌 도리가 없으니까 그러한 생활하는 것입니다. 누구가 가서 그 불쌍한 여자를 보고 자유를 주겠습니까. 자유를 주기 위하여 사는 문제 마련해야 합니다. 또 요사이 서울역 지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거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 한 인텔리입니다. 그 일자리 없어졌어요. 신문에서 이 나라 발전이 잘 된다고 이렇게 잘 된다고, 그 누구 발전입니까? 재벌만 발전합니다. 중계급 미들 클레스 사람들에 대한 관심 없고, 그들이 일하다가 실패하고 또 해보고 실패하고 마침내 서울역에 가서 살고 있습니다. 또 가족이 부모님 집으로 보내고 또, 사는지 안 사는지도 알아보지 못해요. 자기 어디 있는지 연락하기 부끄러워서 못합니다. 마침내 길로 나가서 자살합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요. 그 사람 예수님을 소개해서 하나님, 문제해결하신 하나님, 구주란 말은 문제해결하신 주님이란 뜻입니다. 구원이란 말, 문제 해결한 것은 한국교회가 구원이라는 것은 천당간다고 얘기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런 뜻이 없어요.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 문제 해결한다, 그래서 실제 문제 이야기합니다. 전쟁 문제 해결하면 구원 얻었다고 그래요. 병 문제 해결하면 구원 얻었다고, 경제 문제 해결하면 구원 얻었다고, 예수님이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기도하면 성령을 통하여 지혜를 주시기를 약속하셨습니다. 물론 지혜를 얻기 위해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무조건 복종하라고, 어떤 때는 예수님이 네가 무엇무엇 하라고 할 때, "주여 당신이 하면 좋겠지만 난 못해요" 그러면 지혜를 얻을 수 없어요. 주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통 모르지만 당신이 명령하셨으니 하겠다고 그런 정신이 있으면 지혜를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북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북 사람들이 지금 먹는 것이 없고 힘이 없고 어떻게 할는지 통 몰라요. 돌아다니면서 풀 먹습니다. 나무 먹습니다. 지금 나무가 다 없어졌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를 위하여 기도하면, 또 만약 통일이 생기면 무슨 조건, 남한 사람 거기 가서 땅을 사서 그 사람 자기 좋은 일만 하면 되지요. 올바른 토지 나눠주는 방법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면 나라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토지법 따라 가는 것 여러 번 말하게 해서 다시 말하기 힘들어요. 싫어하지만 사실 대만, 홍콩, 싱가폴 하나님 법대로 경제 문제해결했습니다. 토지법 올바르게 했어요. 온전한 것이 아니지만서도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효과 나요. 그래서 내가 항상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제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천당에 대한 말 그만두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생기기 위해 노력하길 원합니다."
앨범을 들었던 것이 99년이니, 대천덕 신부님의 책을 읽는데는 8년이 더 걸렸다. 그리고는 더 큰 감동에 휩사여, 믿음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지나치게 영적인 한국 기독교에서 자란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영적인 것이 실제적인 것임을 깨닫고 모호성에서 벗어나 현실성이 추구하는 기독교인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 관하여 드릴 말씀은 '필독' 뿐이다.
저자소개:: 1918년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장로교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과 한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미국 데이비슨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한 뒤, 성공회로 옮겨 남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1946년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57년 성 미가엘 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을 재건하기 위해 한국에 온 그는 1964년 신학원장직을 사임한 뒤 이듬해에 강원도 태백 산골짜기로 들어가 예수원을 세웠다.
할아버지인 R. A. 토리 1세로부터 시작한 성령론과 헨리 조지의 사상에 토대를 둔 경제 이론 및 공동체에 관한 가르침은 그의 치열한 삶과 함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쳐 왔다. 성령세례를 중시하고 말씀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사회정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개척자의 길을 걸어 온 그는, 2002년 8월 6일 타계하여 태백 산골짜기에 묻혀 있다.
저서로는 <대천덕 자서전-개척자의 길>, <나와 하나님>, <우리와 하나님>,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 등 다수가 있다.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6쪽 그러므로 이른바 '영적'인 문제만 두라는 사람들과 '실제적'인 문제만 다루는 사람들은 진실(또는 현실)을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7쪽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문제는 기도와 영적 전쟁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영적인 문제는 현실의 삶 즉 실제적인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머리말
9쪽 가난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헨리 조지는 일깨워 준다. 또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사도 요한에 따르면, 자기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의 물질적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 또한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이다(요일 3:11-18; 4:20).
10쪽 유엔은 인권에 대한 서른 가지 목록을 펴냈는데, 그 목록에는 토지에 대한 권리가 빠져 있다. 하지만 토지권이야말로 성경에 명료하게 정의되어 있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기본권이다.
l. 토지와 경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희년
16쪽 먼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다룰 때에는 그들이 살았던 역사적인 정황도 함께 고려하려고 한다. 토지에 대한 율법의 규정은 아주 명료한데, 그 기본법은 레위기 25장에 들어 있으며 요지는 23절에 담겨 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이 말씀이 토지에 대한 모든 성경 말씀의 기본 전제이다. 모세시대 이전에 이와 다른 가르침이 있었다는 암시도 없고, 성경 어느 곳에도 이 원리가 폐지된 적이 없다. 선지자들은 이 가르침을 계속해서 더욱 강하게 선포한다.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예언은 실패하였지만 성경의 예언은 성취되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연구는 참으로 긴요하다.
19쪽 '자유'는 현대인에게 대단히 매혹적인 단어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다. 레위기 25장 10절에는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러므로 땅이 없는 자유란 아무 의미가 없다.
2. 자본과 이자
22쪽 예측하지 못한 비상상황에 대응하거나 개량을 위한 자본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든 자금을 차입한 사람들은 이자를 지불하다가 인생을 끝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자가 너무 높아 여생을 이자 지불을 위해 허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서로 돈을 빌려 주되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한다. 따라서 안식년까지 상환하지 못한 채무는 탕감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관대함은 성경적 토지법의 일부분이다. 만약 희년에 모든 토지가 원래 주인에게 되돌아가는 일이 없다면, 부채를 최대 7년으로 제한하고 이자를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은 실행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23쪽 많은 경제학자들이 토지를 자본에 포함시킨다는 사실, 토지를 별도로 다루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일은 도적질과 다를 바 없다. 자본은 '응축된 노동'(frozen labor)이다. 그래서 자본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며, 노동의 결과물을 축적한 사람이나 그에게서 그 결과물을 증여받은 사람의 소유이다. 반면에 토지는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애오라지 하나님이 만드셨으며 인간은 토지를 더이상 만들 수 없다.
3. 재산에 대한 율법
26쪽 신명기는 레위기에 나와 있는 내용 이외에 또 다른 어떤 것을 보탠 바가 없다. 다만 남의 땅을 탐내지 말라는 엄한 명령(신 5:21)고 함께 안식년과 빚의 탕감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의 땅을 탐내어 저당 잡힌 토지를 되찾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제 땅으로 삼아 버리는 일은, 성경의 토지법이 아니라 바알법에 호소할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는 심각한 악행이다.
4. '미쉬팟': 토지법의 시행
30쪽 실로 여리고를 정복한 해는 가나안 족속으로부터 토지를 해방시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배한 첫 번째 희년이었다.
31쪽 2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도 토지권이 상실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듯싶다. 희년은 계속 선포되고 시행되었다. 이것은 레위기 25장 10절에 적혀 있는 그대로이다.
32쪽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삼상 8:11)라는 말로 시작해서 주변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일과 같은 토지 몰수가 이스라엘에서도 발생하리라고 예언했다. 여기서 '재도'(manner)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미쉬팟'(mishpat)을 번역한 말이다. 미쉬팟은 흔히 '심판'(judgement)으로 번역되는데, '권리'나 '관습'을 뜻하기도 한다. 또 이스라엘의 율법에 의해 형성된 관습뿐 아니라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이방의 관습'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5. 열왕(The Kings)과 토지
36쪽 다윗이 투기나 저당 또는 그 밖에 율법이 금하는 사기 행각으로 토지를 차지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근거는 전혀 없다. 실제로 하나님의 토지법을 어기는 행위를 자행했던 사람들은 바로 후대의 왕들이었다.
6. 분열된 왕가
39쪽 오므리의 뒤를 이은 아합 왕은 북왕국에 '바알주의'를 들여오고 '여호와주의'와 '율법'을 말살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여호사밧은 엘리야 선지자의 영향을 받아 계속해서 바알주의에 반대하고 방백들을 유다 전역의 성읍들에 보내어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게 하고(대하 17장), 그 후(대하 19장)에는 사법 제도까지 개혁한다.
41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을 쓸어 버리도록 하셔야 할 만큼 땅이 더렵혀진 이유도 바로 그 바알주의 토지 제도 때문이었다(왕하 17:8; 렘 2:7; 출 23:24; 신 9:5; 18:12; 호 11:11).
7. 나봇의 포도원
43쪽 아합 왕이 토지에 대한 탐욕에 빠지고 이세벨이 페니키아의 (바알주의) 토지법을 이스라엘에 적용한 일이 이 사건의 주요 내용이다.
8. 저주의 신, 바알
48쪽 고대 로마의 한 현인은 "로마가 멸망한 것은 대토지 소유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48쪽 아합 왕에게 했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왕상 21:3)라는 나봇의 답변은, 오므리의 법률 체계 하에서는 바알 신과 왕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었다. 나봇과 상속인들은 처형당하고 나봇의 토지는 왕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접수하려는 순간, 분노한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와 저주를 퍼붓는다.
9. '바울주의'와 '여호와주의'
54쪽 유럽은 기독교화되어 가면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반복하였다. 입으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실제로는 바알의 법을 실천했던 것이다.
10. 아달랴
56쪽 아달랴는 이세벨 못지 않은 잔악한 여인이었다.
11. 부자와 가난한 자
60쪽 가난한 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로 뒷받침되었던 상류 계급의 모든 생활 방식-상아 궁전, 주연(酒宴), 과식, 향락과 음악에 대한 탐닉-은 농부 출신 선지자 아모스에 의해 성경에서 가장 신랄한 언어로 정죄당했다.
62쪽 성경에서 '가난한'(poor)과 '온유한'(meek) 어느 쪽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한 가지 단어를 가지고, 경제적 빈곤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백마흔네 번, 압제와 착취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스물여섯 번 이상 등장한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읽을 때는 이 사실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는 말씀은 "압제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기 기업인 토지를 되돌려 받을 것임이요"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는 페니키아 법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변질된 로마법 하에서 권력을 장악한 당시의 지주들에게는 대단히 도발적인 선언이었다.
12. 선지자들
68쪽 "주께서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세워 놓고 재판을 시작하신다.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 집에 있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치 맷돌질하듯 짓뭉갰느냐?"(사 3:14).
69쪽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 나가 더 이상 서 있을 공간조차 없게 하여, 땅 한가운데서 홀로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사 5:8)(10:12도 보라).
13. 신약성경
78쪽 구약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정부의 규제와 왕의 행위로 시행되거나 폐지된다. 왕은 여호와의 율법을 시행할지 바알의 법을 시행할지 결정하는 주체였다. 반면에 신약성경에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 전까지 개개인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갖게 되리라고 기대한다.
78쪽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공의[제임스 왕이 고용한 성경 번역가들은 사력을 다해서 '공의'(justice)라는 단어 대신 '의'(righteousness)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사용했다.]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80쪽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이 모두 '영적인' 말임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전혀 없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제거해야 하는 위협적인 존재로 보는 지주들을 피하지도 않으셨다. 다만 따로 가르치시는 자리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폭력이 아니라 자발적인 실천임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반면에 일반 대중은 메시아가 오면 군대나 천사,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시행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14. 자유를 선포하라
82쪽 예수님의 사명에 대해 그분이 스스로 내린 가장 놀라운 정의는, 고향인 나사렛에서 하신 말씀 속에 녹아 있다. 이 기록은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데, 이사야 61장 1, 2절을 인용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자유의 해'(the year of liberty)를 선포하기 위해서 오셨음을 분명히 밝히셨다.
83쪽 누가복음 4장 22절에서는 사람들이 이러한 '은혜의 말씀'을 듣고 기이하게 여겼다고 말한다. 은혜란 물론 거저 주는 선물을 가리킨다. 즉, 부채를 탕감해 주는 일이요 기업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다. 예수님은 여기서 자유를 선포하며 은혜를 전하고 계신다. 안식년법과 희년법의 핵심단어는 '자유'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기업으로 자유롭게 돌아간다. 여기에는 어떤 비용도, 어떤 의무도, 어떤 업적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명하셨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84쪽 콘스탄틴 시대에 로마 제국의 지주들이 진정한 회개 없이 '회심'한 이래로 기독교회의 지도자들은 줄곧 예레미야 시대의 선지자 노릇과 제사장 노릇을 해 왔다. 즉, 구약의 토지법을 일상생활에 실제로 적용하거나 실현하는 일은 애써 무시하면서 그 법의 영적 해석에 대해서는 자기 편한 대로 말을 바꾸는 짓을 일삼아 왔던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통상 교회가 토지법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권한이 없다는 논리로 정당화되어 왔다.
15. 진행 중에 있는 희년
87쪽 예수께서 약속하신 희년은 겨우 3년 뒤, 제자들이 법이나 정부의 움직임을 기다리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로 결단했을 때 실현되었다. 이렇게 여호와의 토지법은 폐지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법을 따른다고 입으로만 떠벌리고 실제로는 바알의 법을 따르는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위선적인 지배 계급의 코앞에서 성취되었다.
88쪽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백성들 가운데서 진행 중인 희년은 이 마지막 희년의 전조(前兆)이다.
16. 교회와 토지
90쪽 16세기에 재세례파가 성경적 토지개혁을 요구했을 때,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그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교회는 이미 최대의 지주였던 것이다. 신교와 구교 사이의 전쟁에서 진정한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토지였다.
17. 토지와 교회의 소명
95쪽 교회는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담당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며,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초청하는 일이요,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도록 양육하여 제자로 만드는 일일 뿐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최선을 다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그들을 투입하는 일이다.
98쪽 대부분의 나라에는 많은 종류의 교회들이 있지만, 거의 모든 교회가 사회에 대해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으며 오로지 내세(the Next World)에 대해서만 가르칠 뿐이다. 교회는 이런저런 방법으로 헌금을 거두어 사명을 감당할 비용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이때 교회의 사명이란 단순히 사람들을 설득하여 '예수 믿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천당행 여권을 주신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우리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100쪽 결국 토지와 교회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로 귀착된다. 토지를 갖는 일,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사명을 망각하고 부패하여 그저 또 하나의 지주로 전락해 버리지 않는 일.
18. 기독교적 식민주의와 제3세계의 빈곤
102쪽 이슬람은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데서 시작되었다.
107쪽 그리스도의 교회는 애오라지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교회의 죄악은 우리의 죄악이다. 교회의 실수는 우리의 실수이다. 우리는 그러한 죄악과 실수, 우리가 야기한 그 모든 고통에 대해 회개해야만 한다. 용서를 구해야 하며 성경이 진정으로 가르치고 있는 바를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만 한다. 복음은 가난한 자, 압제받는 자, 절름발이, 소경, 노숙자, 고아, 과부, 토지가 없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 이것이 온전히 성취되리라고 가르쳐야 한다.
19. 영원한 경계(警戒)
109쪽 성경적 경제법은 항상 효력을 발휘했다. 다시 말해 항상 보통 사람들에게 혜택을 끼쳤다. 반면에 지주들에게는 방해만 되었으며, 따라서 지주들은 그것을 바꾸려고, 또 사람들이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도록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왔다. 성경적 경제법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112쪽 "영원한 경계는 자유의 대가이다."
116쪽 지주들보다 강한 세력은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헨리 조지와 달리) 조지스트들은 한 번도 이 사실을 정말로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다. 그 세력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다. 그리고 성경적 경제학은 그분의 율법이다.
ll. 성경적 경제학과 헨리 조지
1. <노동자의 상태> 중에서
122쪽 인간은 창조주의 평등한 피조물들이자 그분의 섭리 아래서 삶을 영위하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이다. 따라서 토지의 사용에 대해서도 평등한 권리를 갖게 되므로, 토지에 대한 평등한 사용권을 부정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불의하다.
또한 인간은 개별적 욕구와 능력을 가진 개인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그 결과를 향유할 권리를 갖는다. 여기서 노동 생산물에 대한 '사적 소유권'(right of private ownership)이 발생한다.
122쪽 그러므로 토지에는 노동 생산물의 예처럼 사적 소유권은 발생할 수 없지만 '보유권'(right of possesion)은 발생할 수 있다.
123쪽 따라서 토지에 대한 보유권의 이점을 정의성(正義性)과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노동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토지 자체의 가치를 공적으로 징수하기만 하면 된다.
2. 이자와 인플레이션
124쪽 레위기 25장은 토지권에 대한 원리르 기록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대출금 이자를 징수하는 문제도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대출금에 대해 이자를 청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자를 받아서 자본의 대가를 획득하는 데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 제도와는 정반대이다.
127쪽 레위기 25장이 언급한 토지권에 대한 또 하나의 원리는 7년마다 빚을 탕감하는 일이다. 만약 채무자가 안식년이 되기까지 빚을 갚지 못했다면 그 빚은 탕감되어야 마땅하다.
128쪽 안식년에 빚을 탕감해 주는 일은 사업의 원리나 경제 제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성경이 말하는 '정의'의 범주에 속한 일도 아니다. 가령 이자율을 낮추는 정도라면 그런 일은 정의의 차원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안식년의 법처럼 이자는 물론이고 대출 원금조차도 받지 않는 완전한 부채 탕감 제도는 오히려 '자비'의 범주에 속한다(미 6:8 참조).
128쪽 이처럼 정의(신용협동조합이 빚지 않을 정도의 이자만 받는 일)와 자비(7년마다 부채를 탕감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법이 지켜진다면, 가난한 사람이 거의 없는 건강한 경제로 변모할 것이 틀림 없다. 모든 사람들이 이웃을 착취하는 일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이 약속은 했지만 결코 달성하지는 못했던 바로 그 상태이다.
129쪽 잠언 20장 10절은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고 가르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플레이션(화폐 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지속적인 물가 상승과 통화 팽창 현상)을 매우 싫어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130쪽 천 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선포되어 온 주님의 말씀-곧, 모세가 레위기에 기본적인 율법의 일부로 기록했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 언약을 갱신할 때 다시 한 번 선포했던 말씀, 그 후 솔로몬과 미가가, 그리고 장차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회복할 날을 기대하면서 에스겔이 또 한 번 선포했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도량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첫 번째 편지: 성경적 경제학의 적용에 관하여
139쪽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목회자와 선교사는 <진보와 빈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은 전 세계의 위대한 고전 중 한 권이며 성경의 향기를 풍길 뿐 아니라 성경의 선지자 같은 느낌을 줍니다.
140쪽 성경적 원리를 알면서도, 우리가 매일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동남 아시아와 중동 등지에서 접하는 끔찍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침묵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선교사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면 토지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 동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4. 두 번째 편지: 토지세에 관하여
148쪽 <길잡이 성경>(The Comppanion Bible)의 벌링거 박사(Dr. Bullinger)는 "세 개의 그리스어 단어는 모두 한 종류의 사람들(fellahin), 즉 압제받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전제적이고 압제적인 통치자 아래서 조용한 삶을 영위해 가며, 세금 징수자와 불법을 행하는 이웃으로부터 착취당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마 5:5에 관하여)
150쪽 우리는 생산의 두 가지 요소가 토지와 노동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본'이라 불리는 것은 응축된 노동이며 과거에 생산적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저축한 것입니다. 실제 토지의 가치에 부과되는 세금인 부지 가치세를 의미 있게 사용하면, 정부는 공공경비를 조달할 수 있는 동시에 토지 가격을 경쟁력 있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lll. 성경적 경제학과 한국교회
1. 한국을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
158쪽 사람의 노동에 세금을 부과한다면 일하는 것에 대해 벌을 주는 일이나 같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사회가 가치 있게 만든 토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사회가 우리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투자한 것을 다시 그 사회로 되돌려주는 일이다. 그러기에 사실상 세금이 아니라 '사용료'인 셈이다.
160쪽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아마 독자들은 내심 왜 지금껏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까 궁금해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될 때 지주 제도가 로마 제국에 깊이 침투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66쪽 의미 있는 토지세 제도를 시행하도록 기도하고 선포하며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여러분이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다.
2. 영적 전쟁과 I.M.F.
170쪽 그들은 100년 동안 하나님이 아니라 논리를 의지해 왔으며, 그로 인해 그들의 운동은 계속해서 그 기반을 상실해 왔다.
3. 한국인의 심성, 샤머니즘
176쪽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탐욕은 우상 숭배라고 했다. 샤머니즘의 밑바탕에는 탐욕이 있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서 모든 탐욕을 제거하시고 대신에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려는 갈망으로 채워 주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린다.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에 기만당하고 착취당해 비참한 지경에 이른 북한 동포에게 복음이 될 것이다.
4. 통일을 대비한 한국 교회의 준비
181쪽 통일을 위한 기도의 첫 번째 전제 조건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185쪽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한국의 교회가 공의에 더욱 관심을 갖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교회가 공의를 말할 때 인본주의적 개념이 아니라 성경적 원칙을 옹호하도록 기도하고, 더 나아가 정치권이나 경제계의 실력자들이 성경적 공의를 법률로 제정하고 실천하는 일을 시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오순절에 교회에 성령이 부어졌을 때 토지 투기꾼들은 자신들의 부동산(토지와 주택)을 팔았다. 그러고는 토지 판매 대금을 교회에 헌납하여 구제 사업에 사용하게 하였다.
lV. 성경주석(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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