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현재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교자',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지 귀 기울이는 목회자', '교계의 록스타'로 잘 알려진 랍 벨,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에 있는 마스 힐 바이블 교회의 개척 목사인 그는 특별히 '누마NOOMA'라는 비디오 교육 시리즈를 통해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예술사에서부터 양자 물리학, 건축학, 경제학 이론, 유럽의 냉장고 크기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것을 부지런히 탐색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찾아 설교에 적용하는 그는 '구름을 한데 엮는 설교자'로 불리고 있다. 상상력이 질식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진리 이면의 진리, 실재 이면의 실재에 대해 늘 질문함으로써 복음의 렌즈를 통해 더 큰 관점으로 실재를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의 목표다. 저서로 『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 『성, 영성, 결혼을 말하다』, 『당당하게 믿어라』, 『Drops Like Stars』 등이 있다.
서문_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해본 일
21쪽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예수의 이야기라고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의심스러워진다. 선택받은 소수의 그리스도인은 천국이라고 불리는 평화롭고 즐거운 장소에서 영원히 살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아무런 가망도 없이 지옥에서 고통과 형벌 속에 영원히 살 것이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배웠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그 신앙을 거절하는 것은 곧 예수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매우 해로운 메시지이며, 전염되듯 확산될 수 있는 예수의 사랑과 평화, 용서와 기쁨에 대한 메시지를 가로막는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그 메시지를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1장 선교지로 가는 도중에 자동차가 주저앉으면 어찌할 것인가?
35쪽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천국에 가느냐 마느냐밖에 중요한 것이 없다고 믿고 그 점을 반복해서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그 메시지인가? 인생의 핵심이 그것이란 말인가? 다른 어딘가로 가는 것 말이다. 그것이 복음이고 기쁜 소식이라면, 사람들을 다른 어딘가로 가게 하는 것이 예수가 하시는 일이라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 메시지와 이생의 관계는 고작 다음 생애에 필요한 것임을 손에 쥐어주는 것밖에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최선이란 말인가?
36쪽 예수께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문제라는 말이 맞다. 하지만 이 말은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어떤 예수께 라는 말인가?
40쪽 그러나 문제는 그 '개인적인 관계'라는 말이 성경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장 이 세상이 바로 새로운 저 세상이다.
64쪽 부자 젊은이가 '영생'을 얻는 것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방법을 묻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그 사람이나 예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예수는 그것을 가르치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 천국은 '이 세대'와 '오는 세대'라고 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73쪽 그날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의도하신 평화와 조화와 건강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향해 "이제 그만!"이라고 말씀하시는 날이다.
77쪽 탐심은 평화롭지 않은 상태이다.
85쪽 그래서 사람들이 "천국에 가면 뭐하지?"라고 물으면, "오는 세대에서도 계속될 것들 중에서 뭘 정말 하고 싶지?"라고 되묻는 것도 답이 될 수 있다.
95쪽 예수께 천국은, 덜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더 현실적인 것이었다.
99쪽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죽으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시작된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 시작되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을 지금 경험하는 것이다.
3장 지옥
108쪽 히브리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말이나 그러한 개념을 묘사하는 단어가 없고, 죽음과 무덤을 일컫는 단어들이 몇 개 있을 뿐이다.
110쪽 생명과 죽음을 살아 있음의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113쪽 게헨나. 도시의 쓰레기 처리장. 이것이 전부다. 성경에서 '지옥'을 언급하는 부분은 이것이 전부다.
118쪽 지옥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그 누구에 대해서든 하나님이 주신 선함과 인간애를 거절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하면 실제로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를 예수는 과격한 이미지와 그림과 은유의 혼합으로 말씀하신다.
121쪽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새로운 일을 하신다. 모든 사람을 인간적 연대로 부르신다. 모든 사람이 형제이고 자매다. 편애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두가 동등하다.
126쪽 예수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뿌리로 돌아오게 하려고 하셨다. 이 세상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를 열방에 보여주라는 거룩한 부름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하셨다. 그 사랑은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고 예수는 확신하셨다.
129쪽 예수는 '이교도'와 '이방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설득하려고, 그래서 그들이 죽어서 불에 타는 일이 없게 하려고 지옥이라는 말을 사룡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라고 하신 소명과 정체성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경고하기 위해서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을 향해 지옥을 말씀하셨다.
140쪽 상당히 많은 영어 번역 성경들이 이 '콜라조'의 '아이온'을 '영원한 형벌'로 번역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의 '끝없는 형벌'로 해석한다.
그러나 성경 저자들은 '끝없는'이라는 의미의 말을 쓰지 않는다.
141쪽 우리 마음 깊숙이 숨겨진 비밀에서 비롯되는 악에서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지 못할 때 일어나는 거대한, 사회 전반적인 붕괴와 혼란에 이르기까지, 이 크고 넓고 끔찍한 악을 지칭할 단어가 필요하다.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로 '지옥'은 제법 잘 어울린다. 그러니 그냥 그대로 쓰자.
4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될 것인가?
160쪽 새로워지고 돌이키는 것은 온 우주가 하나님의 위대함으로 빛나게 한다. 끝나지 않은 형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170쪽 하나님의 면면과 전혀 관계하고 싶어 하지 않을수록 하나님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그 사이의 공간은 커진다. 사랑과 전혀 연관되고 싶지 않다면, 사랑 없는 현실이 주어질 것이다.
172쪽 사랑은 그렇게 일어난다. 강제하거나 조작하거나 강압할 수 없다. 사랑은 언제나 상대방이 결정할 여지를 남겨둔다. 하나님은 그래,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결국은 사랑이 이기기 때문이다.
5장 살기 위해 죽다.
182쪽 '화해'는 관계와 관련된 단어다. 두 사람 사이에 혹은 두 그룹 사이에 어떤 논쟁이나 차이나 잘못이나 불의와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해결할 길을 찾았고, 그래서 다시 합치게 되었을 때, 평화가 이루어졌을 때 쓰는 말이다.
183쪽 '승리'와 '파괴하다'라는 말은 전쟁 용어다. 군대와 군인과 정복의 세계에서 빌려온 은유다. 이 본문에서는 예수가 악과의 전쟁에서 이기셨다는 관점에서 십자가를 설명한다.
183쪽 '구속'이라는 말은 사업과 금융과 경제의 세계에서 쓰는 단어다. 무엇인가를 구속한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복원시켜주고, 재평가하고, 되사는 것이다.
188쪽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를 고취시킨다. 고취시킨다는 것은 생명을 준다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었다.
194쪽 예수는 자기 자신의 죽음에 비롯될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우리가 이기적 자아와 교만과 자기 의와 자기만족과 반항과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그것들에 대해 죽으면, 생명이 수많은 길을 통해서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올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자신의 죄와 증오를 꽉 쥐고 놓지 않으려는 것은 마치 낙엽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나무와 같다. 가을에 붙잡혀 있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6장 지천에 널린 바위.
210쪽 바울은 '이방 사람'이라는 광범위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다른 모든 사람'을 일컫는 1세기의 용어다.
216쪽 우선 배타성이 있다. 예수만이 길이다. 정해진 방식대로 예수를 믿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지 못하거나, 구속받지 못하거나, 천국에 가지 못한다. 그 표현은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배타성이 있다. 여기에 속했거나 아니면 지옥에 가거나 둘 중 하나다. 두 가지밖에 없다.
그리고 포괄성이 있다. 이 포괄성은 모든 종교에 문을 열어놓는다. 착한 사람은 누구나 들어갈 것이고, 산은 하나이지만 길은 여러 갈래라고 하는 포괄성이다. 이러한 포괄성은 마음만 바르다면 혹은 행동만 기준에 맞는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다음에는 포괄성 이면의 배타성이 있다. 이러한 배타성은 예수가 길이라고 주장하지만, 모든 것을 포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사랑은 당연히 다양한 문화에 속한 온갖 부류의 예상치 못한 사람들도 포함시킬 것이라고 하는 가정 또한 단단히 붙잡는다.
7장 복음은 그렇게 작지 않다.
240쪽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큰아들은 너무 오랫동안 자신이 해석한 이야기를 붙들고 있었던 나머지, 다른 관점의 이야기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관대하고 사랑 넘치는 아버지의 말이 어렵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해석해서 들려주시는 우리의 이야기를 믿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지옥을 경험한다.
247쪽 인생이 단순히 '들어가는 것'의 문제였던 적은 없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한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의 문제다. 잘 산다는 것은 고요함과 평화, 그리고 영혼이 안식을 누리는 그런 느낌이면서, 동시에 질문하고, 배우고, 창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 선한 세상에서 같이 살면서 같은 기쁨을 발견하는 그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253쪽 폭력적인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하게 만든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준다. 하나님은 원래 평화를 가져오는 분이라야 하는데, 그렇게 선포되었는데, 오히려 잔뜩 긴장하며 공포를 떠는 추종자들을 양산한다.
8장 이제 끝이 왔다.
266쪽 ..., 예수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예라고 대답하도록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우리를 초대하신다.
267쪽 사랑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역사를 다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를 놓아준다.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그 역사 말이다.
간단서평:: 랍 벨이 『Love Wins』를 내놓자 보수 기독교 진영은 『God Wins』로 전면 반박했다. 랍 벨은 미국 보수 기독교 사회에서 '사탄'이라고 불릴 만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랍 벨이 썩은 기독교를 살릴 중요한 선지자라고 생각한다. 일단 그는 목사이면서도 종교적인 테두리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그는 잘못된 기독교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공정한지를 보여준다. 그의 성경 해석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성경 자체를 연구하는 측면에서 그에게는 고의적인 왜곡 의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심지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되어 해석된 성경 구절들을 부인한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그의 해석 때문에 그는 보수 기독교 사회에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를 내 마음에 들인다. 그는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가장 현대적으로 풀어낸 저자라고 생각된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 요약 및 견해 (0) | 2013.07.12 |
---|---|
리처드 스턴스 <구멍 난 복음> 요약 및 견해 (0) | 2013.07.03 |
이지훈 <혼·창·통,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 요약 및 견해 (0) | 2013.04.08 |
우광호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이태석 신부 이야기> 요약 및 견해 (0) | 2013.03.25 |
유진 피터슨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 요약 및 견해 (0) | 2013.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