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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 요약 및 견해




저자소개:: Eugene H. Peterson

1932년 워싱턴 주 스탠우드 출생. 개신교 영성신학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목회자로, 캐나다 리전트 대학(Regent College)에서 영성신학을 가르쳤으며,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장로교회(Christ Our King Presbyterian Church)에서 30년 간 목회자로 섬겼다. 현재 리전트 대학 석좌교수로 저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그가 쓴 책들은, 깊은 영성과 성경 신학적 바탕, 상상력이 풍부한 탁월한 문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릴 적 늘 찬송가를 불러 주며 성경 이야기들을 들려 주던 신앙심 깊은 어머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신앙인의 길을 보여 주고자 노력했고, 지금 그의 세 자녀는 조각가, 목회자, 작가로서 신앙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교회에 첫발을 디딘 내 친구에게』, 『시편으로 드리는 매일기도』(이상 홍성사 역간), 『다윗-현실에 뿌리박은 영성』(IVP 역간) 등이 있다. 

      

      머리말

8쪽 "이슬 같은 청년"은 메시아의 청결한 젊음을 묘사하는 표현일까요? 아니면 그 땅의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메시아의 카리스마적인 매력을 일컫는 것일까요? 


      1. 청소년기는 선물입니다 - 퇴화와 성장의 갈림길에서

13쪽 C. S. 루이스는 근심에 빠져 있는 어느 부모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산에서 10마일쯤 떨어져 있을 때만 그 산이 푸르게 보이는 것처럼, 가정도 그 사정을 잘 모를 때만 '평범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14쪽 청소년기는 창조주께서 어린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계획하신 과정일 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부모에게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해 계획하신 과정입니다. 

26쪽 부모가 해야 할 주된 일은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6쪽 부모의 주된 임무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충만하고 생생하면서도 그리스도인답게 되는 것'임을 삶으로 보여 주는 가운데, 자신의 약점을 숨김없이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2. "내 마음대로 옷 좀 입게 내버려 두세요" - 선택과 결정에 대하여

29쪽 청소년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는 데 보냅니다. 

31쪽 정체성은 결정의 산물입니다. 청소년들은 각자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을 빚어 내는 결정을 합니다. 그들은 결정의 주체가 됩니다. 이처럼 선택하는 능력을 키워 감에 따라, 그들은 자기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확신을 쌓아 가게 됩니다. 

33쪽 뛰어난 신학자라면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과 활동에 대해 말할 때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과 연결지어서 다루어야 합니다. 

35쪽 아이들 대부분이 튀는 행동을 통해 어른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점은, 자기들이 '유별난 존재'가 아니라 '구별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3. "나 교회에 안 갈래요" - 거부와 저항에 대하여

47쪽 청소년들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고 스스로를 정의하려는 의도에서, 때로 '부정'과 '거부'라는 장치를 사용합니다.

50쪽 여기서 새로운 관계란, 아버지와 딸 사이 또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관계를 뜻합니다.

50쪽 부모와 함께 같은 집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으니 온건한 지각을 가진 아이라면, 부모가 그리스도인이고 주일날 교회에 간다고 해서 그들이 성인(聖人)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56쪽 부모가 자녀의 반항하는 소리와 더듬거리며 내뱉는 의심에 찬 말에 귀를 막는다면, 신앙에 따라 결정하는 법을 배우는 매우 흥미로운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4. "강요하지 마세요" - 권위와 순종에 대하여

64쪽 부모에게는 권위가 있고 자녀는 순종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체계가 주어진 상태에서,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응답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자녀를 복종시킬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권위를 제대로, 그리고 지혜롭게 행사할 수 있을까?'입니다.

67쪽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눅 2:49 표준새번역)

69쪽 '어머니에게 매달려 있는 아이'라는 뜻의 대중적 어원을 가진 '타프'(taph)와, '어머니로부터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아이'라는 뜻의 대중적 어원을 가진 '나아르'(naar)입니다. 

성전에서 예수는 막 '타프'에서 '나아르'로 이동하신 것입니다. 

73쪽 권위가 권위주의가 될 때, 권위는 도덕적 힘과 영적인 에너지를 잃어버립니다. 

73쪽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방법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단어는 히브리어 '무사르'(musar)와 헬라어 '파이데이아'(paideia)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단어를 '디서플린'(discipline)으로 번역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말은 '징벌'과 같은 뜻을 지니는 단어로 그 의미가 축소된 것 같습니다. 

74쪽 이 때 '훈련'은 어린 사람이 손윗사람의 성숙함을 보고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개인적인 관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훈련의 핵심이면서 권위에 대한 가장 성경적인 표현은, '성장을 지도하는 주의 깊은 관심'입니다. 



      5. "어른들은 이해 못 해요" - 세대 차이에 대하여

88쪽 차이가 충돌로 퇴보하는 일이 많은 세상에서, 세대 차이는 개인적인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기회이자 이익을 추구하거나 우월성을 주장할 기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일에 부모 세대는 앞장 서야 합니다. 

89쪽 지혜로운 부모들은 세대 간의 차이를 지키려 하고 그 차이를 기뻐합니다. 그런 부모들은 자신에게 남과 나눌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청소년들도 부모에게 유익을 끼칠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6. "왜 날 항상 못 믿으시는 거예요" - 신뢰와 불신에 대하여

96쪽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신뢰를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부모의 위치에서는 신뢰를 가르치고, 개인의 위치에서는 신뢰를 배웁니다. 이렇게 그들의 '부모됨'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로워집니다. 

97쪽 청소년들은 걸음마를 배우는 것과 매우 흡사한 방법으로 신뢰받는 법과 신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것을 터득해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지나 온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후원과 확인을 받으면서 배웁니다. 

98쪽 청소년들이 부모의 신뢰를 저버리거나 부모를 실망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실패도 할 것입니다. 실패는 청소년기의 위대한 경험이며 청소년기에 널리 퍼져 있는 경험입니다. 신뢰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많은 실수 중 하나일 뿐입니다. 

101쪽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 안에 신뢰를 확립하시고 키워 가시는 방법은, 먼저 행동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모범적 실천을 통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7. "날 사랑한다면, 허락해 주셨을 거예요" - 옛 사랑과 새 사랑에 대하여

116쪽 유아기와 유년기 동안 습득되고 양육된 사랑은 이제 더이상 써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또 다른 사랑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복음서에 설명되어 있고, 신학자들이 강해했으며, 가장 기독교적인 강단들에서 설교된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도 바울이 사랑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본문으로, 결혼식 때 자주 읽히며 그렇게 읽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이 진리에 의해서 세워지고, 확장되고, 새롭게 될 수 없는 사랑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녀의 열세번째 생일에 부모에게 읽어 주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8. "엄마 아빤 위선자예요" - 도덕성의 눈뜸 앞에서

123쪽 청소년들은 자기 부모들이 훈련시켜 준 원리들을 사용해서 정부와 학교와 또래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리며, 부모에 대해서도 예외를 두지 않습니다. 

123쪽 위선의 죄는 스스로 탐지하기 가장 어려운 죄 중 하나입니다. 위선에 빠져든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매우 빠릴 눈이 멀게 됩니다. 외부의 비난이나 한바탕 흔들어 주는 방해가 없이는, 몇 주일이건 몇 년이건 자신의 종교와 도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도덕을 지키는 경찰 행세를 하는 동기가 우리의 기대만큼 순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기능은 매우 놀라운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131쪽 위선자들이란 종교적인 삶을 의식화하는 데는 시간을 쏟되, 정작 그렇게 살 의도는 전혀 없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그들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실천을 통해서 믿음의 삶을 사는 데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위선자들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죄를 더 많이 짓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가장합니다. 그들이 더 자주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더 자주 꾸며댑니다. 



      9.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 목표의 혼란에 대하여


137쪽 교회에는 미래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사람들을 준비시켜 주는 교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망'(hope)의 교리입니다. 소망이 없다면 미래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바로 막연한 기대'(wishing)와 '불안'(anxiety)입니다. 

140쪽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적인 일과 하나님의 명령을 전혀 연결시키지 못하고, 주중에는 '생계를 꾸리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주말과 저녁시간에는 '기독교적인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직업에서 찾지 못한 의미를 만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직업은 제자도의 통로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1쪽 우리 사회는 그런 식으로 특정한 직업을 숭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많은 돈을 주며 또한 우러러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수였고 바울은 천막을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직업 모두 일의 강도나 위신이나 인류에 끼치는 유익 면에서 다른 일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144쪽 "가서 일자리를 찾으라"고 말하는 학교나 사회의 기대는,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는 주님이 주시는 임무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10. "오늘 밤에 차 써도 돼요?" - 독립-홀로서기에 대하여

152쪽 성(性)은 환상 속에 갇혀 있고, 직장을 갖게 되는 나이는 늦어지며, 정치는 남의 일 같고, 교회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는 현실에서 계속해서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적어도 청소년의 관점에서는, 성인의 특권인 권력과 자유를 대표합니다.

155쪽 성숙은 사랑과 친밀감과 진리의 체험을 자신의 사적인 영역 너머에까지 확장하는 데서 얻어지는 성과입니다. 

157쪽 부모는 청소년에게 인간성을 시험하는 유용한 도구로 자동차를 바라보도록 가르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11.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 청소년기의 영성에 대하여

168쪽 청소년들은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며 싹터오르는 자신의 몸에 대해 서투른 만큼, 새롭게 부상하는 영혼의 가치들에 대해서도 서투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 반면 몸은 너무나 명백하게 보이는데다가 요란스럽기까지 하기 때문에, 청소년의 영성은 아무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눈치조차 채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리게 됩니다. 

171쪽 유년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죄의 도덕적 측면이며, 청소년기에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죄의 영적 측면입니다. 

174쪽 의에 목마르고 굶주린 모든 사람들에게 영혼의 만족을 약속해 놓고 돌아서서는 그들을 중독의 지하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사기물품들은, 시장에서 제공되는 마약뿐이 아닙니다. 일, 지위, 섹스, 음식, 그리고 권력도 중독이 될 수 있습니다. 

176쪽 도덕성의 문제에서는 대부분 금지 조항을 다루게 됩니다. "안돼"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반면 영성의 문제에서는 대부분 거부를 다루게 됩니다. "안 돼"가 내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177쪽 사람을 경직시키는 금지 조항들은, 종신형 선고를 받고 사형수 감방에서 사는 것과 같은 억압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금지 조항들이 자발적인 거부로 발전해 갈 때에는,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 희생적인 사랑의 절정은 부활입니다. 



      12. "나를 절대 용서 안 하실 거예요" - 위기의 사건에 대한 반응

190쪽 부모가 자신의 기준이 크게 손상당하는 일을 겪거나 가정사적인 재난을 만나는 위기에 처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은 '묵인', '정죄', '용서' 이 세 방식 중 하나입니다. 앞의 두 경우는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지만, 가족 관계에는 매우 파괴적입니다. 세번째는 드물기는 하지만 놀랄 만큼 구속적입니다. 

195쪽 용서의 행위는, 죄가 어떠한 것이건 그 죄를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됩니다. 용서는 죄를 못 본 체하지 않고 가리지도 않으며, 죄를 그냥 봐 주거나 완화시키지도, 죄에 대해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용서는 죄를 직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의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죄로 인해 어떤 고통과 대가가, 어떤 귀찮은 일과 불편이 생길지라도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죄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엄청난 용서의 행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입니까? 

 용서는 죄를 지은 사람을 용납(accepting)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용서는 그 사람에 대한 새로운 사랑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일으킵니다. 



      맺음말

201쪽 성경을 연구하다 보면 퍽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모범적인 가정이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204쪽 혈연 관계가 은혜의 관계로 변화됩니다. 성령님의 공동체인 교회에 기초가 되는 원리와 같은 원리에 의해, 우리의 자연적 가정은 깨닫게 되고 구원받게 됩니다. 



간단서평 :: 조쉬 맥도웰의 <좋은 아버지> http://sovereignty.tistory.com/143 이후 제가 가정에 관한 가장 좋은 기독교 서적입니다. 다른 기독교 서적 중에는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신앙에 대한 강요를 역설하는 통에 어이 없어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느껴집니다. 또한 이것을 성경의 구절구절에 맞춰 구질구질하게 만들지 않고, 커다란 기독교 사상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했기에 유연성이 있게 잘 맞아 떨어집니다. 제 자신의 청소년기를 돌아보아도 정말 그러한 부모 혹은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계셨더라면 할 만큼 좋은 예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용납 받지 못하고, 용서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을 다시금의 미래의 희망으로 만드는 일에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