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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호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이태석 신부 이야기> 요약 및 견해







우광호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이태석 신부 이야기> 요약 및 견해


저자소개:: 1969년에 태어나 강원도에서 성장했다. 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가톨릭 언론에 몸담은 후 평화방송, 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을 지냈다. 현재 가톨릭 전문 월간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 아프리카』,『아빠의 기도』,『유대인 이야기』등이 있다.



이태석 신부 소개::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와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1991년에 가톨릭 수도회인 살레시오회에 입회하여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1992년부터 광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공부하고 1997년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2001년 서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1월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톤즈로 향했다.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된 톤즈에서 그는 선교활동을 펼치는 한편, 의료시설이 전무한 그곳에 병원을 짓고 오지 마을을 순회하며 이동진료를 하는 등 의사로서 활동했다. 그리고 톤즈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 건물을 재건하고 교사들을 영입하여 고등학교 과정까지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다. 이태석 신부가 세운 돈 보스코 고등학교는 수단 남부에서 가장 실력 있는 학교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내전과 궁핍으로 상처가 깊은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음악을 가르치면서 브라스 밴드를 구성했다. 이 브라스 밴드는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정부행사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초청되어 공연을 했다. 

2008년 11월, 휴가와 모금할동을 겸하여 한국에 입국했다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수단을 돕기 위한 활동을 쉬지 않았다. 병을 이겨내고 수단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았지만, 결국 2010년 1월 14일 새벽에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친구가 되어주실래요』가 있으며, 수단에서의 활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가 영화관에서 상영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2005년에 인제인성대상과 2007년 보령의학 봉사상, 2009년 한미자랑스러운의사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 7월 봉사와 선행의 공로가 인정되어 국민훈장 무궁화장에 추서되었다. 


44쪽 "사랑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고통까지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80쪽 이태석 신부 스스로 고백했듯,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다 그 자신이 한센병에 걸렸던 다미안 신부,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의사 알베르트 슈바이처, 한국 고아들의 몸과 마음을 씻어주었던 소 알로이시오 신부 등, 신부 이태석이 탄생하기까지는 이와 같은 보살핌과 가르침이 있었다.



96쪽 "만일 제가 한 영혼을 구하는 데 성공한다면 저는 제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걸 확신합니다."

"신부는 혼자서 천국이나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잘살면 그의 좋은 표양으로 구원된 영혼들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잘살지 못하거나 나쁜 표양을 주게 되면 그 나쁜 표양으로 저주 받은 영혼들과 함께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돈 보스코의 건강을 염려하며 휴양을 권하는 한 부인에게) 저는 제 건강을 돌보기 위해 신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과 희생, 땀으로 일관된 삶이었다. 돈 보스코는 1888년 1월 31일 새벽, 72세의 나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하늘의 품에 안겼다.



182쪽 '아북'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는 "총과 칼을 녹여서 그것으로 클라리넷과 트럼펫을 만들면 좋겠어요."라는 기특한 말을 했다.



187쪽 "예수의 마지막 유언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사랑의 드러나는 방식은 무엇입니까? 일치입니다. 너와 내가 일치되지 않으면 사랑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일치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말의 일치, 생각과 생각의 일치가 아닙니다. 내 삶의 짜집기와 다른 사람 삶의 짜집기가 일치해야 합니다. 마치 저의 소년 시절이 아프리카 아이들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죠. 나의 삶이 다른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의 삶이 나의 삶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러한 일치가 중요합니다. 이 일치 속에서 우리는 참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께서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23쪽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이 아이들이 제게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눈빛만 보면 부끄러워지나 봅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은 것만 같아 미안해지나 봅니다. 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것들을 저 혼자 다 갖고 있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나 봅니다. 이제 제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나누어야겠습니다.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들을 이쯤에서 멈추어야겠습니다. 이제 마음에서 맴돌던 그 다짐들을 행해야겠습니다. 

나누면서 제가 더 풍요로워짐을 느낍니다. 제 것을 나누어주었는데도 아무 것도 줄어들지 않고 자꾸만 자꾸만 나눌 것이 더 많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나눔은 참 신기한 요술 항아리입니다. 게다가 제 마음에 기쁨과 행복까지 선물로 주니 아무래도 이 나눔은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비밀열쇠인 것만 같습니다. 



간단서평::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을 듣기조차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그러한 배타적인 태도는 신이 주신 선물을 문전 박대하는 꼴이다. 예수를 닮은 삶이 아니라 누가 과연 이 고귀한 희생 앞에 담대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개신교에는 북한에서 넘어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100원짜리 청십자 의료보험을 만들어 의료혜택을 받게 했던 장기려 박사도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강단에서 중심이 되기 힘들다. 영지주의를 무척이나 싫어하면서 정작 강단은 영육의 삶이 철저히 구분된 영지주의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태석 신부, 그의 삶을 보면서 마치 예수가 우리에게 '제발 들으라, 제발 따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즐비한 세상이다. 예수가 그들 안에 살지 않는 것 같은 세상이다. 의지를 가지고 삶을 바꿨던, 이웃의 곤란을 해결했던,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갔던 한 사람의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