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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미제라블> 무엇이 장발장을 만드는가



정의와 사랑, 이 둘이 함께 완성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정의라는 기치 아래 빵 한 조각 훔친 죄인도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장발장은 거기서 스스로 악인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그를 변화 시켰는가?  


사랑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성경에서 모든 해답은 바로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즐겨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나는 그 대안으로 나눔과 공동체이다. 


먼저 나눔은 결코 단순한 먹거리의 나눔이 되어서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을 게으르게 할 뿐 아니라 무기력하게도 만든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은 확실히 다른 차이를 만든다.  


필리핀 제자들선교회, 알깐따라 여사에게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UCCP(United Church of Christ in the Philippines)가 시행했던 Livelihood로 예를 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과 빵을 주는 것은 일시적인 도움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듯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과 빵을 만드는 기술을 알려줘야 한다.  Livelihood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융자를 해주고 직업을 갖거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왔던 사업이었다."


한국 청소년들은 기회의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고가 과외를 받는 친구들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우리는 기본적인 기회의 평등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계속적으로 퇴보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경쟁을 통해 전체적 상승효과보다 패배의식이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결국 기회의 평등이 마려되지 못한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경쟁 체제가 사회의 균열을 심화시킨다. 





다음은 공동체로서 그 연대가 갖는 힘을 이야기 하고 싶다.  장발장을 살린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주교이다.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주교라고 칭한 것은 그가 다른 종교인들과 분명 다르게 장발장을 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발을 '형제'라 불렀고, '영혼'있다고 칭하였다. 그것은 장발장에게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게한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무한 경쟁 사회이다. 돈이 맘몬(우상 신)이 되어 신의 도보다 성공의 우월함을 선한 것으로 여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복지란 또하나의 비용으로 여겨진다. 또한 정치판에서도 사회복지란 표심을 흔들 수 있는 주요한 아젠다 작업의 소재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성공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갖는다. 권력과 부가 결국 사회를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어떠한 정의와 사랑을 꿈꿀수가 없다. 경감 자베르가 그토록 신 앞에 다다짐하며 지켜려고 했던 정의가 결국은 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가 만든 틀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필리핀에서 많은 가족 공동체를 보게 된다. 자본주의가 만연한 사회, 그러나 아직은 살만한 마들이 많다. 자살률도 한국 사회 같지는 않다. 자본주의에 병든 마닐라 지역과는 다르게 바기오를 중심으로 한 벵겟 지역의 사람들은 더욱 강력한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족문화를 가지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똑 지방의 루보라는 마을을 갔었다. 비포장도로로 3-4시간을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시골과 마찬가지로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우리에게 볼 수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동체 의식이다. 


루보는 시골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다. 루보는 시골이다. 여기서 굶는 사람들은 없다. 루보는 시골이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이 대학을 다닌다.  루보는 서로가 서로가 책임지고 있었다. 물론 그와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그곳에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유치원과 유아원이 있다. 그곳의 선생님은 국립 대학교를 나와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가능할까? 


누군가 그 선생님의 생계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면 그녀는 거기서 세월 좋게 자원봉사를 할 수 없다. 누군가 유치원의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누구도 거기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아이들의 교육이 소외된 곳에서 살고 있다면 그곳을 떠나 도시를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루보에서는 루보를 떠나기도 하지만 루보로 돌아오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장발장에게 정의란 누구도 고통받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법이란 것도 본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 지켜야 할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법이 자본주의의 질서로 대체될 줄은 몰랐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약자가 누군이지 아는 것이 법을 따르는 기본적 이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장발장에게 사랑이란 용서와 또다른 기회를 받는 은혜이다. 1등 아니면 기회가 박탈되는 시대에서 우리는 그 어떤 희망도 느낄수 없다. 이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가족같은 공동체라는 제2의 기회 제공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무리 사회에서 상처받아도 위로받고 새힘을 내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공동체가 기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답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망이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은 바로 공동체이다.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사랑과 정의 공동체가 절실히 필요하다. 


프랑스 혁명에서는 그것이 민중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민중이 자본권력을 무너뜨린 세계사의 별과 같은 존재이다. 그와 같은 일이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공동체는 5가정만 모여도 가능한 일이다. 


주제 넘게 너무 많은 일에 손을 뻗어서는 자신도 돌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나? 그렇다면 가까운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뤄 정의와 사랑을 실천해보는 일을 추천한다. 


장발장을 지켜주던 그 은촛대를 잊을 수가 없다. 그 은촛대를...



Take my hand, I'll lead you to salvation 
Take my love, for love is everlasting
And remember the truth that once was spoken
To love another person is to see the face of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