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회복 3: 세 왕 이야기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세 왕은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여 망국의 주인공이 되는가? 그간 우리는 지나치게 미화시킨 이야기들만 해오고 있고, 들었다고 생각된다. 이제 성경이 말하는 인간들이 세운 왕이 실패담을 듣고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의 필요성을 느껴보자.
1. 사울의 越權; 내가 좀 쎄지?
기스의 아들, 가장 준수한 소년, 키도 장신의 멋쟁이 왕이 세워졌다. 비록 그의 자격에 대한 의문도 있었지만, 싸움도 잘하는 것으로 밝혀져 겉보기에는 완벽한 왕이 백성 위에 섰다. 그는 어떻게 변하는가?
삼상13: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전쟁의 승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의 출발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에서의 승리가 그를 다시 강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삼상15: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그리고 하나님의 뜻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것을 스스로 누리는 데 급급한 사람이다. 즉 그에게 주권이란 왕, 자신의 뜻이다.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 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말한 "짐이 곧 국가다."
그가 살아가는 방법은 어떠한가?
당연히 힘을 모으는 것이다(삼상14:52). 그리고 다른 이의 힘을 분산시켜버리는 것이다(삼상18:21).
그에게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한 낯 여인네들의 노래다. "사울이 죽은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17:7 중) 사울은 이때부터 더욱 폭군이 된다. 심지어 다윗이 기름 부은 사람이 되어도 그를 죽여야 자신의 왕권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왕권을 지켜가기 위해 하나님의 뜻 앞에 越權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처음 사울이 다윗을 부른 이유에 대해 알고 있는가? 하나님이 사용하신 악령의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수금 잘 타는 사람이 좋다기에 다윗을 불렀다.(삼상16:16) 그는 또 하나님을 대신할 신접할 여인을 찾는다.(삼상28:7) 사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도구였으며 그 도구는 늘 대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버렸다.
왕권 중독자, 사울은 별 일 아니어도 다윗을 의심하고(삼상20:25-26), 심지어 아들인 요나단에게는 창녀의 아들이라 욕하면서 왕권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욕하고(삼상20:30),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나눈 밭과 포도원은 왕이 주는 것이라 역설하며(삼상22:7), 제사장들까지 죽이기에 이른다(삼상22:18-19).
이 만큼 하면, 사울이 왜 첫 번째 왕이었는지 이해가 간다. 다른 놈, 아니 왕들은?
2. 다윗의 越權: 왕이니까 여자 하나 정도는 괜찮지?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의 시작이 얼마나 좋았는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뜻 안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제2대 왕이 바로 다윗 아닌가? 그가 얼마나 순결했는가? 자신을 죽이려고 왔던 사울마저 하나님이 선택했던 사람이었던 이유로 죽이지 않았다(삼상25:6-7).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가인은 몰랐으나, 오히려 다윗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한 여자를 갖기 위해 越權행위를 한다. 자신의 오른 팔, 우리아를 죽을 수밖에 없는 전장으로 내몬 것이다. 이것은 다윗과 이스라엘의 끔찍한 역사의 시작이다. 비록 나단의 경고에 의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만 그의 죄는 벌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호된 결과를 가져온다. 왕자가 공주를 강간, 왕자와 왕자 간의 살인, 왕자가 후궁들을 강간하는 등의 죄악이 판치는 나라가 된다.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주인 삼지 않은 상태에서는 뭐든지 가능하다. 우리아를 죽인 일이 한 순간에 판단 착오라고 믿는 순수한 사람들과는 얘기하기가 어렵다. 우리아는 장군 중의 장군이다. 그를 죽이기 위해 다윗은 얼마나 계획을 짰을까? 그 악행이 실행되어지기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한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빼앗은 나라는 그렇게 몰락해 간다.
3. 솔로몬의 越權: 내 지혜 좀 괜찮지 않나?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칭송받는다. 어느 교회에서도 솔로몬의 더러운 성생활은 언급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후궁 칠백 명과 첩 삼백 명(왕상11:3)을 거느리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아담 이후에 많은 성경이 인물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여러 여자를 거느리며 살았던 것을 생각할 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지혜에 있다. 일천 번제(왕상3:4)를 통해 얻은 지혜(알다시피 일천 번제는 번제의 규모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 횟수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 규모를 자신이 돈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돈으로 치룬 솔로몬은 그렇게 드리더라도 할 말이 없다.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바 여왕을 만난 이후로 그는 달라진다. 스바여왕은 온갖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그를 치켜세운다(왕상10:-). 특히 성전과 왕궁의 규모에 대해 스바 여왕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까지 극찬을 한다. 그러자 솔로몬이 하는 짓, 越權. 곧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왕권을 내세우기 위해 왕궁을 더 호화스럽게 세운다. 자신의 지혜가 더욱 칭송받도록! 그리고 스바 여왕과 같이 멋진 이방 여인을 탐하다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에 이방 신의 산당까지 지어준다. 그리고 성경은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났다고 말한다(왕상11:9).
솔로몬은 지혜를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잃었다. 그는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컸다(왕상10:23). 그게 끝이다. 하나님은 그를 버렸다.
4. 맺음말
세 왕 모두 택하심을 받았다. 그래서 온전하길 바라는 것은 순수한 종교심의 기대일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원한 왕이다. 인간 왕이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완전하신 왕,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이상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의 복 속에 왕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왕권을 넘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자가 됐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간 죄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박살내도 조금은 괜찮다는 예를 만들 뻔 한 결과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삼상16:7). 그 앞에서 세 왕은 越權을 통해 중심을 잃어버린 자요, 하나님을 떠난 대표가 되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나마 성공적인 왕정을 치렀던 다윗의 자손을 메시아로 기다렸던 것처럼 혹시 이상적인 왕의 귀환을 꿈꾼다면 그것은 다시금 죄 많은 열왕의 복귀를 꿈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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