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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주권회복 없는 하나님 나라는 없다.

시작하며
언제까지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금빛 찬란한 나라로 볼 것인가?  적어도 유대인들은 침략국의 주권에 무시 당하는 삶 속에서 메시아가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고 해방되는 나라를 꿈꾸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성경의 무지 속에 살아가는한국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는 입장은 어떠해야 할까?

나라는 국민, 영토, 주권으로 구성된다.  하나님 나라는 이 중 '주권'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1. 하나님의 주권에 반기를 든 아담과 하와 

창세기 3장

당연히 5절에 나타난 '하나님과 같이 되어'에 우리는 초점을 맞춰야 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선악을 분별하시는 유일한 재판관이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스스로 그와 동일하게 되고자 하는 도전을 감행했다.  이것을 단순히 식탐 때문에 하나님 앞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오해한다면 크리스천은 산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그러나 다시 봐도 이 장면은 하나님과 동급이 되고자 하는 인간들의 반란이며, 불행히도 이것은 각자의 '하나님의 주권'을 가지기 위한 왕권전쟁이며, 서로를 죽이는 고대 정치의 시발점이다.

2. 생명의 주권마저 가지려 했던 가인
창세기4장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  4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가인을 죽이는 것을 보호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왜일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 모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생명 주권에 대한 도전을 멈추기 위해 가인을 해하려는 태도를 거부하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평화주의는 하나님이 먼저 주장한 것이 아닌가?

3.  주권을 놓치 않는 가인
창세기 4장

우리는 요즘 토건 괴물에 GG를 쳐야할 판이다.  토건 괴물은 창세기 초반 부에도 나오고 있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17절에 신비로운 이름 '에녹'이 나온다. 그는 창세기 5장 24절

와는 다른 '에녹'이다.  바로 가인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의 보호를 믿지 않고 쌓은 성 "에녹"이다.  '하나님의 사람'의 계보와 대조가 되는 '가인의 사람'의 계보. 같은 이름이지만 전혀 다른 주권에 대한 이해. 그것은 서로 다른 이름 '에녹'에게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 에녹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살다 간 사람이다. 반면 가인의 사람, 에녹은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 살다 간 사람이다.

끝맺으며

주권을 잃어버린 나라, 모두가 주인이라고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있어서 우리는 '주권'을 하나님께 돌릴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 창세기 이후에 주권을 회복한 일과 그렇지 못한 일들을 되짚어 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성경이야기는 현시대의 정치와 경제 등 사회전반에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기에 나는 글을 시작한다. 


준비하는 주제들: 정치와 하나님 나라, 같이의 가치가 통용되는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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