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 <친밀함> 요약
저자 소개: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 1932-1996)
예수회의 사제이며 심리학자.
1932년 네달란드의 네이께르끄(Nijkerk) 출생, 1957년 예수회 사제 서품 후 6년 간 심리학 공부, 그후 미국에서 2년 간 신학과 심리학 통합 연구, 노틀담 대학에서 심리학 교수, 1971년 예일대학 교수, 1981년 자신의 풍요로움에 대한 죄책감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페루의 빈민가에서 삶을 같이함.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에서 교수. 그 후에도 영혼의 안식을 느끼지 못해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정신 지체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L'Arche)의 캐나다 토론토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Daybreak)로 들어가 1996년 9월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함.
20여권 중 유명한 책으로는 <제니시 일기>, <마음의 길>,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영적 발돋움>, 거울 너머의 세계>,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모든 것을 새롭게>, <희망의 씨앗> 등이 있다.
책 정보: 원제 Intimacy, 원문 초판 1969년, 2001년 두란노에서 한글로 번역됨, 역자-윤종석
정황 1. 마술에서 믿음으로
18쪽 날마다 기도하거나, 적어도 잠자리에 들기 전 짤막한 기도문을 외우는 습관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우리 안에 마술적 언어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19쪽 인간은 안심하고 품에 안길 수 있는 마술적 아버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에게 그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리하여 그 존재는 '하나님'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우리 안에 남는다.
21쪽 건강한 발달이란 마술적 세계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영역들에서는 발달하면서도 종교 면에서는 이 미성숙한 차원에 머무르기 쉽다. 그런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마술적 위안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신다.
22쪽 성숙한 종교는 본질상 통합적이다. 자체 준거의 틀 안에 새로운 지식을 모두 통합하여 인간 지성의 새로운 모든 발견과 조화를 이룰 만큼 유연성이 있다는 뜻이다.
23쪽 종교를 그저 깨끗함, 순결함, 완전한 삶 같은 것으로 치부하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흰 천에 까만 얼룩을 묻히는 듯한 감정은 모조리 반종교적으로 보인다.
26쪽 갈등은 분명하다. 해답은 저항도 아니고 억압도 아니다. 통합이다.
27쪽 대학 시절에 종교적 회의가 없었다면 그는 필시 무턱대고 맹종한 사람일 것이다. 전통적 가치관과 개념을 시험해 본 적이 없다면 이는 자유 분방해서라기보다는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부모의 권고를 전혀 시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끝내 비판력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종교적 환경에서 접하는 많은 모호함과 모순과 위선에 반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무엇에서도 진정한 만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29쪽 믿음으로 없던 것이 새로 생기지는 않지만 삶의 기본 실체에 새로운 차원을 더해 준다. 조각조각 나뉜 성품을 의미 있는 전체로 바꾸어 주며, 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통합해 준다. 믿음은 구도하는 마음에게는 영감의 원천이요, 창의적 공동체의 기초이자 삶에 지속적인 갱신을 일으키는 끊임없는 동인이다.
친밀함과 성 2. 사랑의 도전
35쪽 탈취의 존재에 머물 때 인간은 두려움이 동기가 되어 권력을 쫓아 행동한다. 완전 무장 자세로 타인의 행동을 감시하다가 적시에 약점을 잡아 일격을 날린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좋은 직장, 좋은 대학원, 좋은 부대, 좋은 배우자를 놓칠 수도 있다. 이렇듯 아주 미묘한 형태로 우리는 자주 탈취의 누에고치 속에 몸을 숨기고 살아간다.
38쪽 사랑의 기초는 피차간에 자신의 자아를 온전히 고백하는 데있다.
38쪽 진정으로 의존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가장 실존적인 체험으로 상대를 초대하는 일이며,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새로운 차원에 들어선다. 이렇게 연약함을 서로 나눌 때 인간은 폭력을 극복할 수 있다.
39쪽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두어야만 충실한 알곡을 거둘 수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모든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모든 논쟁을 피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41쪽 사랑할 때 남자와 여자는 모든 형태의 권력을 벗고 완전한 무장 해체 상태로 서로 부둥켜안는다. 벌거벗은 그들의 몸은 약한 부분까지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것의 상징일 뿐이다.
41쪽 조건부로나 한시적으로 또는 정신적 제약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성 관계는 아직도 탈취의 형태에 속한 것이다.
46쪽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약점을 다 드러내며 서로를 품는 것은 안전한 일이다. 함께 사랑의 손안에 안기기 때문이다. 자신을 내어 주는 일은 안전한 일이다. 우리가 견고한 기초 위에 서 있다고 말해 준 분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헌신하는 것은 안전한 일이다. 어두운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따뜻이 맞아 주는 본향에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약해지는 것은 안전한 일이다. 창조적 힘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친밀함과 기도 3. 학생들의 기도: 혼돈과 희망 사이
57쪽 기도는 우리 자신을 보는 눈을 뜨게 해주며, 하나님의 알려 주심을 통해 희망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해준다.
59쪽 자기 발견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기도이며, 때로는 자유와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하나님을 강제로 밀어내는 기도이다. 이렇듯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서 숨막히는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혼돈에서 벗어난다.
61쪽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이런 "낙관론의 극을 달리는 한 번 난 철학 형태"에 회의를 감추지 않는다. 그는 모든 악을 회심을 추구하는 인간의 일부로 인식하지 않고 무조건 외부로 귀속시키는 현상을 종교의 피상성이라 지적한다.
64쪽 반영웅적 기도에서 빛나는 새로운 겸손의 자세를 인식할 때, 우리는 그 새로운 신비의 일면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작은 행복, 작은 아름다움, 삶의 작은 의미를 구하는 해맑은 기도이다.
65쪽 연합을 구하며 고통스런 소외감에서 해방되기 원한다. 자신의 고독 이면에 있는 것을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듣고 보며, 하나님의 표현 못할 아름다움에 자신을 드리기 원한다. 이것은 아름다우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다. 감각적 의미에서 아름답다는 뜻이다.
69쪽 감사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알되 방어할 필요가 없고 자신감을 품되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자신의 능력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도움이 필요함을 고백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감사란 소유적 태도와 종속적 태도를 다 버리는 것이다.
73쪽 삶이 선물이며 그 안에 끝없는 약속이 담겨 있다는 깊은 인식이 없이는 진정한 소망이란 불가능하다.
친밀함과 기도 4. 캠퍼스 오순절 운동
77쪽 킬리언 맥도넬(Kilian McDonnell, O.S.B.)은 심지어 "사도 바울도 틀에 박히고 고리타분한 우리의 예배 의식보다는 오순절 집회의 자유로운 열기에 더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79쪽 성령이 오셨다. 구하는 자는 받을 것이요 하나님의 낯선 분이 아님을 느낄 것이다. 그분의 달콤함을 다시 맛보고 그분의 부르심을 다시 들으며 조건 없이 영육의 전 존재로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80쪽 많은 경우 오순절 체험은 갑작스런 자유, 갑작스런 우정, 갑작스런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적으로 의미있는 우정을 가꾸어 가며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좌절을 견뎌 낼 수 있는 내적 능력의 점진적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82쪽 "나는 어디가 어때서 은사를 못 받는 것일까?" 이런 고민은 죄책감과 우울로 발전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전보다 더 고독에 빠질 수 있다. 구해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오순절 운동은 심각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83쪽 진정한 공동체는 밖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 공동체는 안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와 '저들'이라는 미묘한 구분으로 영적 엘리트 의식을 조장하며 본의 아니게 배타적 집단이 되려는 성향이 있다.
84쪽 "성령님은 위험한 일을 하실 수 없다. 그분은 치유하시는 힘이다." 이런 식으로 '리더들'은 하나님의 직접 개입만 믿은 채 명시적 리더십과 책임과 권한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들의 결정적 책임을 유기하는 일이다. 준비와 실제 집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체험들이 참여 학생들의 신앙 생활 전개에 미칠 장기적 영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86쪽 오순절 운동은 인간의 잠재력 밖에서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을 구한다. 어찌 보면 마귀의 세력과 하나님의 세력 간의 다툼의 피해자라는 수동적 도구의 용도 외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용하시지 않는 듯하다. 마귀는 인간 속에 침투해 들어오는 외부 세력이다. 성령도 마찬가지이다. 자연히 '나를 소유한 쪽이 어느 쪽인가?'가 문제가 된다. 단, 선한 쪽이든 악한 쪽이든 그 소유물은 수동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이란 창조를 위해, 다시 말하면 자신의 가장 깊은 잠재력을 실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료 인간을 섬기도록 지음받았다. 그러나 수동적 상태는 기독교의 이런 기본 개념을 온전히 믿지 않는 것과 같다.
87쪽 그러나 오순절 운동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실한 부분인 정당한 종교 체험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경솔한 판단과 편협한 정죄로 이 기회를 잃는다면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친밀함과 공동체 5. 신학교 안의 우울증
108쪽 매우 피로한 사람은 인생이 좋은 것이고 살 만한 것이라는 기본 믿음을 잠시나마 잃어버린다. 그런 사람은 항상 뜻밖의 덫과 위험에 대비하여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108쪽 우울증은 피로를 낳고 피로는 다시 우울증을 심화시키는 식이다.
111쪽 권위주의적인 사람은 삶의 규칙을 주입하지만 권위 있는 사람은 규칙을 삶으로 분명히 보인다.
111쪽 갈등과 마찰과 의견 차이를 반드시 피할 필요는 없다. 그것도 성장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교수들이 권위를 주장하고 관철할 때에만 학생들은 정체감을 찾을 수 있고 자기 삶의 실험을 평가할 수 있으며 견고한 터전에 굳게 설 수 있다. 그런 학생은 우울하지 않다.
113쪽 지도자의 권위란 처음부터 공동체에 내재되어 있는 권위의 표출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도자의 과제는 공동체의 경계선을 안전하게 지키며, 팀원들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 중 그 경계선 안에서 다룰 수 있는 부분과 다룰 수 없는 부분을 가려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팀원들이 정도를 벗어날 때는 지적해야 한다. 그것을 알 때 사람들은 자기 표현에 훨씬 더 자유를 느낄 수 있다.
113쪽 신앙 공동체란 곧 '에클레시아(ecclesia)'이다. 종 되었던 나라에서 자유의 땅으로 불러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즉 지금 이대로가 아닌 현상태를 넘어 다른 것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 가는 것이다. 공동체가 그 자리에 안주하는 순간 신앙을 잃기 쉬우며,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기 쉽다.
친밀함과 사역 6. 사역자와 정신 건강
118쪽 시간과 장소와 존재에 대한 방향 감각, 즉 자신에 대한 올바른 현실 인식이야말로 인간의 정신 건강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125쪽 문제는 누가 누구보다 권위가 많은 데 있지 않고 권위 반경이 분명하지 않은 데 있다.
127쪽 인간이 세상의 얼굴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모든 공동체 형성의 기본 조건이다. 프라이버시가 없는 사람은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다.
132쪽 사역자가 나날의 목회 사역에 재미를 못 느끼고 그저 인생 끝에 주실 하나님의 점수만 기대하고 있다면 그의 정신 건강은 위험한 상태다. 동료 인간들에게 생명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그의 중대한 사역도 똑같은 상태이다.
친밀함과 사역 7. 캠퍼스 사역을 위한 훈련
139쪽 우울증은 질문이 금지될 때 생기는 병이다. 억압된 질문은 속으로 삼켜져 깊은 죄책감으로 바뀐다.
140쪽 사역자가 무신론과 불신을 정통 신앙과 교리의 대립 개념으로만 생각한다면 학생들의 모든 질문은 위협으로 느껴질 것이요, 학생들의 모든 회의는 방어로 맞서야 할 공격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란, 신앙과 불신, 회의와 믿음,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곳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역자 자신의 신앙이 그 좋은 증거이다. 학생들이 이것을 깨우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두려움 없는 분위기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런 깨우침은 절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142쪽 구도의 세월을 공동체에 속해 친밀함 속에서 보내지 못한다면, 구도의 결과는 온화하고 성숙하고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마음보다는 오히려 내홍하고 편협하고 차갑고 계산적인 마음이 될 수 있다.
148쪽 침묵이란, 타인과 대화하는 것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나누는 대화마저 멈추는 시간이다. 자유로이 숨을 들이쉬며 자신의 정체를 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148쪽 캠퍼스 사역자가 학생들을 우정의 대상으로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149쪽 캠퍼스 사역자에게는 집이 필요하다. 친구들과 함께 살며 친밀함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만 사역자는 요동하는 대학 생활의 물결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다.
158쪽 사역 경험의 개인 지도를 통해 자신이 서 있는 곳과 가는 방향을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대학 사회에서 생활하며 사역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준비하려면, 우선 그 직무를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보면서 학생들의 복잡한 생활 양상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어야 사역에 깊이 들어가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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