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충성된 개들은 주인 아닌 다른 사람은 문다. 개가 아닌데 사람을 무는 사람은 개인지 의심된다. 그런 류가 있는 집에는 다시는 안 가게 된다. 나도 사람이기보다 개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것을 멋지다 생각했었다. 아마도 그때는 내가 개였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일당을 벌기 위해 사람을 패는 일에 인간성을 판다.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창조된 시발점인가? 개는 그래도 주인의 사랑에 조건반사적 헌신을 보인다고 본다면 이 사람들은 무엇인가? 돈에게 사랑받지 못했으면서도 충성을 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이로써 돈을 벌기 위해서 인간성까지 포기할 수 있는 존재임이 증명됐다. 비유하자면 개가 먹이를 더 얻기 위해 다른 개들을 잡아먹는 꼴이지만 개는 적어도 이 미친 짓을 하지는 않는다. 개가 글을 썼다면 아마도 제목은 '미친 사람새끼들'이였을 것이다.
나 자신은 분명 사회문제의 근원은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 낸 물질만능주의 전염병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이토록 지독하게 변하는 데는 구성원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니라면 우린 인간이 아니라 로봇일 것이다. 원래 로봇이었다고? 포기하세요!
사회의 문제가 구십이라고 치자. 단 백의 십의 책임만 있더라도 우린 스스로 인간을 악마화 시키는 책임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결정에 핑계가 아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 집에 돌아가면 좋은 아들, 남편, 아빠이고 싶겠지? 악마의 자식은 어디까지나 악마이다.
어떤 큰 배 위에 전 인류가 있다. 식량도 물도 없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이웃의 피를 빨아 목을 축이고 이웃의 살을 뜯어 배를 채운다. 그리고 그것은 유행한다. 모두가 그렇게 산다. 이 배 위에 있는 것들은 무엇이겠는가?
피로 채워진 통장. 그것이 유행이 된 시대. 좀 더 여유롭게 살기 위하여 다른 이를 속이고 기회까지 탈취하면서도 그것을 승리하고 말하고 믿는다. 그러한 괴기스러움이 주변을 채우는 공포물 같은 사회. 인간성은 다시 살 수 없음에도 그것을 파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것도 아주 싼 값에!
사람이 희망이다. 인간성이 죽은 사람은 절망이다. 절망 가운데 살아가면서 돈 몇 푼으로 사람 흉내 내려고 하니 꼴이 우습다. 가진 게 없어도 인간미가 있었던 때를 잊지 말자. 그땐 인간이 꽃보다 아름답다 말했다.
제발 사라지지 마라, 너, 사람아. 꼭 이겨라, 돈의 마귀를. 기필코 회복해라,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던 인간세상.
은 30냥을 위해 한 사람을 승냥이 떼의 밥이 되도록 넘긴 유다의 자손이 되겠는가? 회개하라. 그렇게 살다가는 지옥될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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