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구원 받아야 할 이유
11쪽 구원(redemption)이란 포괄적인 개념으로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13쪽 '구원'을 받아야 할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죽음과 그 증상들인 악과 고난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14쪽 죄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14쪽 인간이 자신의 생명의 영위를 위해 창조주 하나님에게 의존하는 태도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14쪽 사실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의존은 그분에 대한 순종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16쪽 '죄'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를 버린 결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한 데 있습니다. 이렇게 올바른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인간의 '자기를 주장하려는 의지(Selbstbehauptunswille; Self-assertive will)'의 발로의 결과입니다.
18쪽 자기 주장을 하려는 의지로 자기 생명의 창조주인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인간은 생명의 근원인 땅에서 분리된 뿌리뽑힌 풀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20쪽 아담과 하와의 불신과 불순종의 동기는 스스로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21쪽 스스로 '하나님같이' 될 수 있다는 사탄의 꾐에 빠져 하나님에 대해 '자기 주장'을 하고 그분으로부터 소외되어 사탄의 종으로 자기의 제한된 자원에 갇히게 된 인간은 자신의 자원의 빈곤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서는 자신의 자원을 늘릴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다른 사람의 자원을 빼앗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굴종시켜 그들의 자원으로 자신을 섬기도록 하여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23쪽 사실 죄는 삼중적인 소외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 이웃으로부터 소외, 그리고 진정한 자아로부터의 소외를 가져옵니다.
23쪽 자기를 하나님으로부터 닫아 버리는 것이 원죄라면, 원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죄를 실행 죄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28쪽 우리가 가진 자원이 제한되어 있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과 고난의 문제를 그 제한된 인간의 자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29쪽 '복음'은 바로 이러한 제한된 자원 속에서 죽어 가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하여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3.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구원의 사건이다.
33쪽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 길지 않은 이 한 구절의 말씀 안에 예수의 자기에 대한 이해와 자기의 사역에 대한 이해가 요약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7쪽 다니엘 7장 3절에서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본 사람과 같이 생긴 신적 존재가 7장 18절 이하에 해석되어 있는데, 그분이 종말 때에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의 대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그 '사람의 아들(인자)'"이라고 한 것은 자기를 바로 다니엘의 환상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창조하고 대표하는 분이심을 미리 나타내신 것입니다.
38쪽 예수님은 군사적,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종말에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는 그런 메시아로 오신 것입니다.
39쪽 주의 종이 새 언약을 세우는 분이라고 합니다. 주의 종이 새 언약을 세우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탄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었듯이 이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의존하는 주의 종을 통해 새 언약을 이루시고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시겠다는 뜻입니다.
43쪽 "그 '사람의 아들(인자)'"이라는 자기 칭호로 나타낸 자기 이해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도 일치합니다. 죄악과 고난으로 다스리는 사탄의 주권에서 떠나 자기 안에 체현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라는 선포는 곧 창조주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여 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을 창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45쪽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시켰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옳았음을 하나님이 인정하셨다는 말입니다.
47쪽 예수님의 가르침은 십자가를 설명하고, 부활은 십자가가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사건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음 안에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곧 구원자다'라는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50쪽 우주 밖의 초월자가 직접 개입한 창조의 사건입니다. 생명이 없는 상태에 생명을 주었으므로 창조의 사건입니다. 시간과 공간 밖에 있는 초월자의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절대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4. 예수의 구속적 죽음에 대한 해석의 성경적 범주들
54쪽 제사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덮는 것(expiation)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보시지 않도록 피로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버리는 것(propitiation)입니다.
55쪽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덮고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버린 결과로 일어난 것이 '화해'입니다.
56쪽 샬롬, 곧 하나님과의 화해 결과는 인간이 하나님과 친구 관계가 되어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끌어다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 것입니다.
5. 하나님의 구원의 주관적 적용
60쪽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믿음이 이 구원을 받는 꼭 필요한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조건입니다.
62쪽 믿음의 본질적 의미는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64쪽 '우리를 위해'라는 우리말 표현은 한 가지 의미밖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즉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오기 위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for us)이 갖는 의미와 마찬가지로 희랍어에서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즉 우리 대신에, 우리의 대표로, 그리고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오기 위해서입니다.
67쪽 믿음을 하나의 극(drama)으로 표시한 것을 세례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했다는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연합되고 그의 부활에 연합된 그 사건을 극으로 나타낸 것이 세례입니다.
69쪽 그래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나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이 나의 순종이 됩니다. 이것이 곧 '주관적 구원 사건'입니다.
69쪽 성경은 이 주관적인 구원 사건을 네 가지 그림(metaphor, 은유)으로 표시했습니다. 즉 의인 됨(justification), 화해(reconciliation), 하나님의 아들 됨(adoption),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 등입니다.
1) 의인 됨: 그 죄에 대해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 의인 됨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죄에 대하여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 속에서 들어가는 것이 의인 됨의 의미입니다.
2) 화해함: 하나님과 인간은 적대하는 관계였는데 이제 하나님과 인간은 친구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 더 이상 불화가 없고 평화가 있습니다. 이 객관적인 화평 상태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주관적인 평안함이 유래됩니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자의 불안에서 해방감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아들 됨: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됨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자기가 아주 독특하게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면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했다는 뜻입니다.
76쪽 이것이 곧 영생입니다. 영생이란 악과 고난으로 얼룩진 인생을 여름날에 엿가락을 늘이듯 길게 늘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단지 물리적인 시간을 길게 늘여 놓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예수님이 가져다 주시는 영생이란 근본적으로 신적인 삶이라는 뜻입니다.
77쪽 세상의 도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착취해서 자기의 자원을 풍부하게 하고 자기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자기 주장하는 의지를 잘 행사하는 것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이 인간의 근본 문제라고 보셨습니다.
4) 새로운 피조물: 이 그림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 죽고 새로운 삶으로 부활했다는 구원의 실재를 나타냅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은 옛 존재와 같이 스스로를 하나님께 닫아 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래 뜻대로 하나님께 열린 존재로서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를 갖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 구원의 종말론적 구조
86쪽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의 등뼈를 부러뜨리셨습니다. 결정적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승리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89쪽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사탄과 이 세상을 거부하고 이 세상의 도, 즉 자기 중심적으로 살겠다는 자기 주장 의지의 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살겠다는 신앙의 결단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첫 열매를 얻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윤리가 나옵니다.
91쪽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 여기서 '살라'라는 표현이 번역하기 힘든 말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정치해 나가라" 또는 "복음에 합당한 시민들의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93쪽 하나님께 대한 의존은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앞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순종 없는 믿음, 새로운 하나님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런 윤리가 없는 믿음은 곧 거짓 의존이며 거짓 믿음입니다. 바로 미신입니다. 결국 순종이 없는 믿음, 윤리가 포함되지 않은 믿음, 이것이 곧 미신입니다.
100쪽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동조하지 않고 오는 세상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사는 삶을 '제자도'라고 합니다.
101쪽 곧 예수님이 걸어가신 자기 부인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제자도입니다.
103쪽 이 그리스도인의 성화가 구원의 현재입니다.
104쪽 이것이 영화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미래입니다.
7. 예정과 지키심
108쪽 예정 교리는 '역사의 중심'에서부터 논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0쪽 그리스도 오시기 전의 역사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위해 준비한 과정으로 그리스도를 향해 가는 역사였고,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사건에 의해 의미를 갖는 역사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사건이 역사의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115쪽 예정 교리는 성경대로 믿음의 현재라는 시점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현재에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120쪽 내가 설령 거꾸러지고 믿음이 약해 이리저리 방황하고 죄를 짓더라도 끝까지 나를 지탱하시고 지키셔서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나를 붙드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예정의 교리는 이와 같은 구원의 확신과 위안을 가져다 주는 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록: 예수는 어떤 메시아인가
131쪽 복음 선포란 그 동일한 복음의 내용을 말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도는 그 복음을 삶으로도 나타내야 합니다.
134쪽 바울은 이 본문에서 자기가 다메섹 도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러 갈 때까지 유대 신학자로서 가지고 있던 메시아 사상, 즉 유대교적 메시아 사상을 육신적 관점에서의 메시아 사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메시아 사상을 갖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것에 의하면 메시아(그리스도)는 우리 모두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담당하신 분입니다(고후 5:14, 21).
138쪽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구원을 '화해'라는 그림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바울만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바울 서신에만 '화목'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42쪽 하나님이 다시 한 번 다윗의 씨를 일으켜 다윗 왕조를 재건하고, 다윗이 이스라엘에게 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 사회적 정의 등과 같은 샬롬을 이룩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윗의 씨, 순(가지), 아들, 다윗, 또는 하나님의 아들을 고대하였습니다.
142쪽 신약 시대의 유대교는 종말의 구원을 첫 구원(출애굽)의 재현으로 보고, 종말의 구원자인 메시아를 모세와 같은 선지자 즉 제2의 모세로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제2의 출애굽의 구원을 이룰 자로 기대되었습니다.
149쪽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께서 광야에서 유월절 무렵 오천 명을 기적적으로 먹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 출애굽의 구원을 기념하면서, 종말에 있으리라고 기대된 제2의 출애굽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그 계절 곧 유월절에 예수께서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151쪽 예수님은 병자를 고친다든지, 오천 명을 먹인다든지, 장님의 눈을 뜨게 한다든지, 물리적인 이적을 행하여 그가 가져오는 영생에 대한 표적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이 세상 사람들의 대표로서) 항상 물리적인 혹은 이 세상적인 또는 육신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합니다.
157쪽 우리가 삶의 근원인 창조주 하나님께 연합되어 창조주의 생명력을 공급받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약속하고 이룬 구원입니다. 이것을 가져다 주는 분이 진짜 메시아 곧 종말의 구원자입니다.
164쪽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근본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또는 자녀들로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거나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게 해주겠다는 약속과 하나님 나라 속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서 이 약속을 제의적으로 성취한 사건으로 실제로 그들의 죄가 용서되게 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또는 자녀들로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히 예수의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서의 죽음을 그의 메시아적 행위의 중심으로 보고, 그들의 선포를 거기에 집중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가 구약이 말한 진정한 메시아(그리스도)요, 사도들의 선포가 옳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173쪽 반면 그의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믿음은 우리에게 종말의 완성 때의 영생을 보장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서 벌써 그 영생의 힘을 우리의 실존의 모든 영역에서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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