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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냄비가 안 되려면 자주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문화제는 서울에서 6만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등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민중의 분위기는 그렇게 뜨겁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철저히 분리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거의 촛불이 일어난 때에는 주변마저도 따뜻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설국열차에서 각 열차 별 계급관리자는 최하층 민중에게 이렇게 설교한다. “I belong to the front and you belong to the tail.”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리를 지키라는 의미에서 던진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시스템을 지키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물론 자신의 삶의 안위를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the front를 위한 일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다 같이 저항하지 못하고 그 시스템의 일부로 남아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한국 사람들은 냄비근성이 있다며 혹독히 평가하는 한국인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보기보다는 민중의 특성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냄비근성은 사실 실패의 연속에서 발생한 빠른 포기의 습성이라고 본다. 일제 치하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분개하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끝내 자포자기하던 시절의 연속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발상일까? 분노가 포기로, 포기가 합리화로, 합리화가 교리화로그러나 그러한 노예근성혹은 냄비근성은 바로 이어진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독재의 기나긴 세월을 통해 철저히 한국인을 train 하였다. 한국인들의 다수는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training에 의해 권력이 만들어 놓은 train의 일부로, train을 변호해 가며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냄비근성은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냄비근성의 특징은 내부발생이 아니라 외부발생이라는 것이다. 내부귀인이 아니라 외부귀인인 것이다. 뉴스를 매일 보고 비판만 한다면 그것은 냄비근성을 키우는 일이다. 냄비로는 라면 밖에 끓여먹지 못한다. 제대로 된 요리를 하려면 냄비를 버리고 뚝배기를 불 위에 올려야 한다. 그 불을 오래오래 견디며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주권자, 국민이다. 국가의 위기를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애써 외면한다면 그것은 주권자로서의 자격박탈이다. 단지 이야기의 소재로 대한민국을 말아먹는 것 또한 위선자가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불편함 속에서 어떻게 우리는 오래오래 타오를 수 있는가? 스스로 그 문제를 겪어내야 한다. 조소만 하고 있지 말고 그 문제의 심각을 고려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정치인 탓, 검찰 탓, 경찰 탓 그만 하고 나오라.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하지 말고 나오라. 희망의 촛불이 되어 달라. 미지근한 네 신앙을 버리고 몸소 그 믿음을 보이라!

 

나오라, 촛불! 일어나라, 정의! 전진하라,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