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저소득 사역자의 복지는 누가 책임지나?

주권회복 2012. 10. 24. 07:00

저소득 사역자의 복지는 누가 책임지나?


사역사 사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있었던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해외나 국내 가릴 것 없이 선교단체의 규모나 선교사의 배경에 의해 후원금은 쏠림 현상이 일어나 왔다. 


마태복음 5장, 누가복음 6장에서 나타나는 산상수훈에 나타난 실천적 사랑의 정신은 온데 간데 없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만나를 통해 지나치게 많이 가지지 말고, 더 많이 가진 자들은 나눌 것을 요구하셨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선교 후원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더 드릴 말씀도 없다. 


이것은 선교사들 내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신교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선교사가 자비량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오늘 들은 비보를 통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캠퍼스 사역자가 허리가 아파서 한의원에 갔다. 그가 속도 안좋다고 하자 한의사는 맥을 짚었다. '영양실조'가 그 원인이었다. 그분은 부끄러운 일을 당했다며 말을 전했지만 나에게는 분이 났다. 


예전에도 모 자매 캠퍼스 사역자가 한의원에 갔다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았는데 이미 몸이 많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것을 애써 영적 자녀를 품은 어머니라서 그렇다고 덮어두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 사역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돈은 고기 사먹는데만 쓰시라고 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시고, 커피는 끊으시라고... 참 속상했다.  


현재도 많은 해외 혹은 국내 사역자들은 기초생활수급자 혹은 차상위계층의 수준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사역자가 돈에 의존적이면 안된다는 율법주의 안에서 스스로를 지나치게 단련시키는 면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누구일까?


하나님의 기초 정치 집단은 교회이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 가족이라 생각한다. 고기 반찬 없는 형제의 식탁을 볼 수 있는 눈, 그것이야말로 영안이라 생각한다. 영혼의 슬픔을 아는 자야 말로 하나님의 눈을 가진 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눔의 의무는 부를 건네받은 성도들에게만 아니라 사역자들에게도 해당된다. 충분한 부를 누리면서도 마치 섬김 받아야할 절대적인 대상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이야 말로 위선이다. 


저소득 크리스천들이 단지 사역자들 뿐이겠는가? 교회 내에도 부의 그림자에 가린 사각지대는 있다. 나의 밥상과 저들의 밥상이 다르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백 날 사랑한다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 그래도 진짜 형제가 되기 위한 노력은 현대 교회가 잃어버린 유기적인 순기능이다. 


'의좋은 형제들'이란 동화가 떠오른다. 형님네 곳간에 누가 쌀 한 포대를 가져다 놓는지, 아우네 곳간에 누가 쌀 한 포대를 가져다 놓는지 우리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